지난해말 대학교수의 ‘환경호르몬 수돗물’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먹는 물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다. 좀처럼 시민들의 먹는물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가운데 나온 환경호르몬 물질검출 발표는 ‘수돗물, 정말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시비를 다시 불러왔다.
전주대 김종훈교수(환경공학)가 지난해 10월 전주시를 비롯, 서울·대전·수원·안동·포항시등 6개 자치단체의 수돗물을 채취 분석한 결과 노닐페놀과 비스페놀-A, 디옥필프탈레이트등 3종류의 환경호르몬 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이들 물질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는 환경호르몬 물질로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교수는 수돗물에 녹아 있는 이 물질을 고체상태로 흡착시킨뒤 그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분석방법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그는 국내 처음으로 고체상 추출법과 액체상 추출법을 병행하고 영국의 맥콜리 연구소와 공동으로 분석한 만큼 결과에 오차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교수의 분석결과 노닐페놀의 경우 전주시와 서울시가 0.15ppb로 가장 높았고 안동 0.14ppb, 수원 0.11ppb순으로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낙동강 하류 취수장의 상수원수에 검출됐던 비스페놀-A는 서울시에서 0.06ppb, 전주시에서는 0.04ppb가 검출됐다. 비스페놀-A는 남성발기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국내의료진에 의해 발표되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디옥필프탈레이트는 서울 3.90ppb, 수원 1.88ppb, 포항 1.80ppb, 대전 1.45ppb였으며 전주는 0.62ppb가 검출됐다.
그동안 다이옥신이나 페놀, 각종 농약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지만 이번 김교수가 발표한 신종 호르몬에 대해서는 전혀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지적되어 정부의 수돗물 관리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이미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함께 환경호르몬 문제는 3대 환경문제로 꼽히고 있을 정도로 그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구체적인 연구등이 진행되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환경부는 김교수의 논문이 언론에 공개되자 자체적인 수돗물 시험에서 비스페놀-A와 같은 물질이 전혀 검출된 적이 없다고 김교수의 분석결과를 반박했다. 디옥필프탈레이트는 앞으로 먹는물 감시항목으로 지정관리키로 확정한 물질이며 비스페놀-A와 노닐페놀등에 대한 김교수의 검사결과는 조사방법등에 문제가 있어 신뢰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김교수가 발표한 3개 항목의 환경호르몬 측정결과를 신뢰한다해도 WTO나 선진국의 수질기준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으로 인체의 유해성을 심각하게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보았다. 자체 수돗물 시험계획에 따라 결과를 지켜본뒤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환경부의 입장표명은 시민들의 불신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수돗물에서의 환경호르몬 검출 파장을 최소화시키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수돗물 관리의 허술함을 드러내 시민들의 불신만을 증폭시켰다는 비난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가 김교수의 분석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던 분석방법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방법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이번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는 환경부의 일방적인 발표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환경호르몬은 적은 양이라도 인체내에 흡수될 경우 빠져 나가지 않고 축적되어 작용하게 되고 수돗물의 경우 사람이 매일 장기간 사용한다는 점에서 환경부의 ‘수질기준 미달’운운은 환경호르몬 폐해의 심각성을 간과한 것으로 지적됐다.
더욱이 환경부는 국내 수질기준이 없는 영향물질에 대한 검사결과는 선진국의 기준을 적용, 역설적으로 수돗물 환경호르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허술했음을 보여줬다. 전주시는 환경부에서 2001년까지 추진하고 있는 용역결과에 따라 먹는물 감시항목 지정등 대응책이 마련될 경우 정수처리 기법도입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다. 오히려 환경부의 발표만을 반복 발표하면서 시민들에게 지나치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어서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는등 다소 허술한 행정으로 일관, 빈축을 사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보다 정확한 성분분석을 통해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수돗물 환경호르몬 허용기준치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환경호르몬 물질제거 대책을 세우고 다른 환경호르몬 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측정전문기관을 설립,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사전 환경호르몬 물질 사용규제 대책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 환경호르몬
환경호르몬이란-독성이 있는 유해화학물질 중에서 생체의 호르몬 분비기능에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로 생체는 물론 그 자손의 건강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외인성 물질. 특히 성호르몬의 기능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생체의 건강뿐만아니라 생식능력을 감소시켜 생물군의 개체수까지도 줄일 수 있다.
내분비 교란물질들은 기존의 독성화학물질들보다 훨씬 저농도에서도 생체에 영향을 미칠수 있으며 먹이사슬을 통해 농축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이들은 대부분 지방친화성이 있어 생체내의 지방내에 주로 축적된다.
대표적인 반응기작으로는 이들이 세포의 호르몬수용체와 결합하여 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하거나 정상적인 호르몬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막는 것등이 알려져 있다.
97년 5월 일본학자들이 NHK방송에 출연해 “화학물질이 환경으로 방출돼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고 발표한 이래 일본에서는 보편화됐다. 영어로는 엔도크라인 디스럽터(Endocrine Disruptor)이며 내분비계 교란물질 또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내분비계 교란물질로는 쓰레기 소각장등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전기절연제 폴리염화페닐, 합성수지 원료로 식품과 음료용 캔의 안쪽 코팅등의 비스페놀-A, 컵라면 용기를 비롯한 각종 식품용기의 스티렌 다이머·스티렌 트리머, 농약및 살충제의 아트라진·DDT등이 있다. 70년대초 처음으로 ‘호르몬 작용성 화학물질’이 유엔에 보고됐지만 지난 95년 미국을 비롯한 OECD국가에서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지난 92년 인간의 정자수가 반세기 동안 절반으로 줄었다는 첫 보고를 시작으로 해마다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또한 80년대말부터는 인간과 비슷한 호르몬 체계를 갖는 야생동물 세계에 엄청난 생태학적 피해를 끼치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의 오대호에서는 새의 알껍질이 얇아지고 수컷의 성기가 퇴화하는등 물고기·새·거북등의 야생동물 16종이 번식을 못하고 죽어가고 있음이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월남참전 고엽제 피해자들중 일부의 불임이나 성기능장애, 95년 경남 양산 소재 모전자부품공장에서 유기용제인 솔벤트-5200취급 근로자들에게 집단적인 불임발생등이 있다. 98년 4월에는 마산과 진해앞바다 암컷 고등(소라류)의 수컷화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일상 생활속에서는 컵라면과 같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 캠음료나 캔에 담긴 음식물, 특히 캔에 열을 가한 제품등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과다한 농약 사용 과일 및 채소는 삼가고 염소계 표백제와 세정제, 염소표백된 종이 등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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