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는 가볍다? 그리고 작다?
그러한 통념을 없애는 판화 전시회가 열린다. 서신갤러리가 기획한 ‘PRINT PRESENTATION Ⅱ 판화-다시보기’. 8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한층 다양한 실험성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판화의 새로운 흐름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모처럼의 자리다. 초대작가는 송대섭 이상조 정미경 정원철 정환선 차순호 씨 등 3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여섯명. 판화 매체를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이다.
넘쳐나는 형식적 실험작업과 혼돈스럽기까지 한 수많은 예술 이론적 개념들, 다양한 매체의 등장 등 미술의 고유한 영역이 새로운 예술언어의 벽을 넘나든지 오래. 판화 또한 새로운 흐름을 이어내는 매체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작업들의 가능성은 역시 전통적 기법으로부터 창출되는 것. 이 전시는 오늘날에 이르러 다양하게 시도되는 실험작업을 주목하면서도 각 판종의 형식과 기법별 작업 경향 변화를 판화의 본질적인 특성으로부터 비교하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초대해 관심을 모은다.
작가들의 작업은 사실적 묘사로부터 추상표현까지 다양하지만 동판과 목판 석판 실크스크린 등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전통적인 작품제작에 충실한 기법별 작품을 고루 전시함으로써 전통적 판화 매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회인 셈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스케일이 큰 것이 특징이다. 작고 가벼운 특징으로 요약되는 판화를 새로운 분위기로 만날 수 있는 것.
갯벌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송대섭씨는 태초의 이미지, 때묻지 않은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갯벌을 모티브로 회화적 이미지를 간결하면서도 상징적 요소의 혼합으로 표현한 혼합판화를 보여준다. 여러차례의 전시회와 꾸준한 판화운동을 통해 전북판화의 자리를 구축해놓은 정미경 이상조씨는 일상성과 역사성의 언어를 내세워 독창적인 표현 세계를 더욱 특징적으로 드러낸다. 동판화가 중심인 정미경씨의 작업은 내면의 정서를 밀도있게 드러내는 것. 많은 노동력과 복잡한 공정을 통해 얻는 판화의 특성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옛사람들의 삶과 그 흔적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삶과 존재의 진실에 주목하는 이상조씨는 실크스크린을 통해 능숙한 표현어법에 의한 긴장감있는 화폭을 전시한다.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 정원철씨의 목판화는 ‘초상화’ 연작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인 정신대 문제를 다룬 것들. 시원한 여백의 공간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다. 이밖에도 수묵화의 서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중국의 수인목판의 세계를 보다 새롭게 열어보여온 차순호씨나 기법적 효과나 아이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손동작과 드로잉을 그대로 살려낸 정환선씨의 석판화 작업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
판화의 다양한 전통적 기법들이 지닌 특성과 그것들이 가져올 표현세계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
큐레이터 유대수씨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다양한 미술적 실험들 속에서 전통적 방식의 그리기는 어떻게 유지되고 지속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판화매체의 유효성, 고유한 기능과 적응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기획한 전시회”라고 소개하고 이들 작품들을 통해 전통적 판화의 가능성을 주목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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