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이 가을 하늘을 밀어 올리며 무겁고 긴 잠으로부터 일어서기를 시도한다. 눈꺼풀이 열리면서 최초인 듯한 세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속수무책으로 드넓어 지는 비애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사고가 명료해진다.
진리의 단순함과 모든 인간적인 것의 운명을 근원적으로 고찰하고자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 책은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끝없이 많은 것들을 베푼다. 좋은 책들은 모름지기 그 안에 살아야 할 하나의 의미로운 인생과 우주를 머금고 있는 법이다.
책들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들이다. 많은 여성들은 TV를 시청하며 자신의 감성을 개발하기도 한다지만 책을 읽는 것과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읽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이다.
TV를 시청하는 사람의 자세를 떠올려보면 그 나른한 수동성에 자신의 존재를 맡겨 놓고 반쯤 졸며 본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에는 창조적 사유와 수고로운 노동이 요구된다. 책을 읽고 있을 때 진정으로 깨어 있는 것이며 끊임없이 진정한 자아와 마주서게 된다.
좋은 책들은 나와 전존재적(全存在的) 삶을 마주서게 만든다. 더 나아가 삶의 지평을 넓이고 존재론적인 한계성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자아와 맞닿아 있는 그 세계를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삶이 남루하게 느껴질 때 향기와 침묵으로 채워진 책을 만나고 싶다.
책읽기는 단순한 잉여적 시간의 오락거리가 아니다.
책에의 탐닉은 지식이나 교양의 획득 혹은 한때의 나른한 권태감으로부터의 탈출과 같은 눈에 보이는 이득도 있거니와 책을 읽는 시공에 드리워지는 완벽한 고요와 정적, 책에 빠져드는 순간의 일상성과 궤도와 인습으로부터의 일탈(逸脫)이 가져다 주는 해방의 경험, 고립과 고독에 의한 자기 몰입이 이끌어 오는 내적 평안과 충만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는 실존적 주체를 억압하고 있는 ‘욕망의 독재와 집착’으로부터 의 자유, 이것들이 책읽기의 진정한 동기를 창출해 낸다.
책을 집어드는 순간 나는 행복한 자유인이 되어 다양한 지식인들과의 사랑에 빠진다. 내가 좋아하는 마광수, 정호승 등 같은 최고의 지성들과 행복한 사유(思惟)의 여행을 동행한다. 엊저녁 늦은 밤 나의 연애(戀愛) 상대는 전북의 자랑 강준만 선생이었다.
/김미경(청소년을 위한 전주내일여성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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