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전기불이 처음 밝혀진 것은 1885년에 건천궁과 그 뜰 앞에 백촉짜리 2개의 서치라이트가 설치된 것이다. 에디슨이 백열등을 개발한 것이 1883년이니까 우리나라에 도입된 전기불로 상당히 빠른 것이다.
BC 6백년경 그리스의 탈레스는 호박(琥珀)을 마찰하면 대전(帶電)하여 가벼운 물체를 흡인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전기현상의 최초 발견인데 이 호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엘렉트론이 전화되어 일렉트리시티라는 말로 유래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전기와 자기(磁氣)가 구별되어 있지 않았었다. 전기와 자기를 명백히 구별한 것은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의(侍醫)였던 W.길버트인데 길버트는 자기와 마찰전기에 대해 처음으로 과학적 연구를 하였다. 그 후 프랑스의 물리학자 뒤페가 음(陰) 양(陽)의 구별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또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에 의해 전지가 발명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페러레이와 맥스웰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전기를 연구하여 오늘에 다변화한 것이다.
전기의 용도도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등불이다. 등불의 역사는 유사이전부터 식물이나 동물의 기름을 태워 조명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목재나 관솔을 태워 불꽃을 이루거나 기름에 심지를 담궈 점등하는 등잔불, 벌밀과 초를 사용하는 촛불이 있었고,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석유를 원료로 호롱불을 사용했다.
고대 동진(東晋)의 차윤(車胤)과 손강(孫康)이 반딧불과 눈빛의 반사로 공부한 것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 하는데 등불의 원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전기불이 처음 밝혀졌을때에 도깨비불이라하여 소위 양반들은 불빛을 가리거나 불빛이 없는 곳으로 돌아서 다녔다. 1960년초까지만으로 농·어촌에서의 전기불은 그림의 떡이었고 도시에서도 특선은 24시간, 일반선은 제한송전되었다.
금강산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북한에서는 ‘전구를 불알, 형광등은 긴불알, 가로등은 떼불알, 소형전구는 줄불알, 수박등은 씨불알’이라고 한다기에 웃었지만 표현만 다를 뿐 그 뜻은 같은 말이다.
작금에 민영화로 전환한다는 문제로 노사간의 갈등이 있어 보이는 한국전력공사는 1898년 한성전기회사로 설립되어 지금까지 국가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공영체제였었다. 금번 정부정책상 공기업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민영화가 거론되고 있다. 전기는 국민생활의 초석이기에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 양복규(명예교육학박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