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들의 가슴에 국화꽃을 심어두었던 우리 문학사의 거목 미당 서정주 시인이 24일 밤 11시7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정신적 혼미함, 쇠잔해지는 기력을 시인은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미당은 20세기 한국 시문학을 지키고 대표해온 이 시대의 원로였다.
지난 10월 기력이 떨어져 강남 성모병원에 노환으로 입원했던 고 서정주 시인은 평생 반려자 부인 방옥숙여사를 사별한 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직계가족이 없는 한국을 떠나 두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이었으나 11월28일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오다가 23일 오전 10시께 폐렴증세를 보이며 의식을 잃은 뒤 끝내 숨을 거뒀다.
1915년 5월18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한 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펼쳤던 미당은 시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해방 뒤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앞장섰고, 정부수립과 함께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창립과 함께 시분과 위원장으로 선출됐으며, 1954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돼 최근까지 예술원 회원직에 있었다. 38년 첫시집 ‘화사집’을 비롯해 ‘귀촉도’ ‘신라초’ ‘동천’ 등 97년 열다섯번째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사에 남을 수많은 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승해(60) 윤(43) 형제가 있으며, 작은 아들 윤씨와 큰며느리 강은자씨는 24일 미국에서 급히 귀국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발인 28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고인이 태어나 살았던 고창 선운리 선영. (02)3410-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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