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대론의 꿈나무’라는 문집을 보게 됐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이들의 꿈과 순수함을 담은 여느 초등학교의 문집이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이 문집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 부모들에게 좀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대론’이라는 초등학교의 마지막 흔적이다.
얼핏 지나다 보니 이젠 잡초만 무성한 교정을 보며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도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데 또 하나의 모교로 가슴에 남아 있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마음은 얼마나 씁쓸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지난해까지 수년간 아이들이 몸담고 있었고, 그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디고 하다. 그것을 알고서 보는 ‘대론의 꿈나무’문집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까지 빳빳한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비록 내가 몸담고 있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이젠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글이 실려있어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 속에 담긴 글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피게 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일년 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혹시 일년 전의 학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은 지 문집 속의 글과 요즘 우리 아이들의 글을 자꾸 비교하며 읽는다.
행여 아이들이 통합이 된 후 더 메마르지는 않았을까, 마음의 문을 더 닫게 되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기 때문이다.
처음 대론의 아이들이 번암에 왔을 때 갑자기 늘어난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에 찬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편하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부탁하던 학부모와 대론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눈빛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우리 반에 온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둘은 수년간 같은 반으로 지내온 번암의 아이들 속에 잘 섞이지 못하고 늘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듯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학년초 그들은 갑자기 많아진 또래들속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는 법을 어려워했고, 독점하던 선생님의 관심을 스무 명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학기초 축구를 하고 와서는 대론에서 온 세 아이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예전의 학교에서는 저학년 아이들과 축구를 해버릇해서 고학년인 제가 축구를 제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기가 죽고 화가 났음이랴.
그러나 1년이 지난 요즘, 아이들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론에서 온 우리반 회장인 정수는 너무 많은 의견이 분분하고 따지듯 묻는 친구들의 의견에 당황해 하던 때와 판이하게 아이들의 의견을 적당히 달래가며 회의를 진행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처음엔 번암의 친구들이 너무 무서웠지만 이제는 번암의 누구랑 제일 친해졌고, 놀 친구들이 많아서 재미있다는 아이들의 맑은 미소를 보며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집단에서 사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최명숙 (장수번암초등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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