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8명창에 드는 사람은, 권삼득, 황해천, 송흥록, 방만춘, 염계달, 모흥갑, 김제철, 고수관, 신만엽, 송광록, 주덕기 등이다. 8명창 중에서도 권삼득은 가장 선배격이다. 나이가 많아서도 그러겠지만, 신분이 양반이라는 측면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권삼득은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출신이다. 권삼득은 양반 출신 광대라 해서 특별히 '비가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양반이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가문 출신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의 아버지 권래언(權來彦)은 벼슬을 한 사람은 아니다. 시골 양반으로서 시문도 짓고, 때로는 관청에 청원서 같은 것도 쓰는 등의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권래언의 문집으로는 [이우당집(二憂堂集)]이 있는데, 이 또한 출판된 것이 아니고 여러 시문을 모아 적어놓은 필사본이다. 이우당은 권래언 자신이 새로 집을 짓고, 그 집에 붙인 당호(堂號)이다. 그런데 권래언은 [이우당기]를 지어 자신이 왜 당호를 이우당이라고 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권래언은 평소에 두 가지 근심이 있었다고 했다.
하나는 가난하던 시절에 부친이 돌아가시어 남의 산에 허술하게 장사를 지냈는데, 늦게까지 이장을 못한 근심이 하나요, 아들 삼득이를 잘못 길러 타향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으니, 그것이 두 번째 근심이라고 하였다.
[이우당기] 뒤에 진주 사람 강필성이 쓴 [이우당서후]에는 삼득이가 술과 음악에 빠진 지가 여러 해 되어, 방탕한 사람들을 좇아 놀며, 집을 떠나 밖에 있으면서 욕됨을 끼치기가 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권삼득은 당시 부모에게는 참으로 큰 걱정거리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시골의 보잘 것 없는 양반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식이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은 가문의 수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족보에서 이름을 빼고, 가문에서 쫓아냈다는 일화까지 전해온다.
자신의 집안에서는 근심거리가 되어 쫓겨나기까지 했지만, 권삼득은 이제 우리 모두가 기념해야 할 인물로 되살아나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평가의 변화도 새삼 놀랍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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