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90년대 전북대생들의 추억이 아련하게 묻어있는 곳,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서점이 아닌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작은 문화공간’으로 자리했던 ‘새날서점’.
사회과학서적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대학가가 유흥가로 변모하는 세월속에서도 십여년동안 도내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사회과학전문서점으로 굳게 자리를 지켰던 새날서점이 오늘(1월 31일) 문을 닫는다.
새날서점은 서울대의 ‘그날이 오면’과 중앙대의 ‘청맥’과 함께 전국적으로도 몇 남지 않은 대학교앞 사회과학서점중의 하나. 그래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새날서점이 전북대 정문앞(현재 구정문)에 문을 연 때는 88년.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고 대학생들의 참여도 뜨거웠던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 ‘새로운 날’을 고대하며 태어던 이 서점은 대학생들과 진보인사들이 이론적 자양분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토양이었다.
서점안은 이념을 공부하는 토론장으로, 차 한잔을 나누며 책을 읽는 북카페로, 마땅한 약속장소가 없던 때 만남터로 애용됐고 서점앞에 마련된 메모판은 휴대폰이 없던 시절 많은 학생들이 약속 장소와 연락처를 남기는 봉수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애정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던 새날서점은 90년대 중반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학생운동이 사그라들고 사회과학서적이라는 의미가 퇴조하면서 수요가 급감한 까닭이다. 전북대 앞의 서점들이 비싼 임대료와 판매저조로 운영적자가 누적돼 하나 둘 문을 닫아가는 가운데에서도 새날서점은 그 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투쟁’을 계속했다.
서점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한 전북대 졸업생 고객들은 한꺼번에 사회과학 도서를 10여권씩 사가기도했고, 10∼20만원의 적지 않은 성금(?)을 슬그머니 서점에 놓고 가는 등 새날서점에서 누린 기쁨을 되돌려 주기도 했다.
그러나 97년말 찾아온 IMF는 매달 2∼3백만원의 적자누적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던져주며 새날서점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으로 만들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서점을 운영해온 박배엽씨가 암으로 투병에 들어가면서 서점 운영은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됐다. 박씨는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남민시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사회과학은 물론 문학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과 뚜렷한 세계관으로 토론을 즐겨했던 문화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어 그의 투병 소식은 주변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남편이 병상에 들면서 아예 서점 운영을 도맡아야했던 아내 차복훈씨는 “남편과 아이를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서점을 운영할 수 없게되었다”며 “서점 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차씨는 지난 20일부터 출판사에 책을 반품하고 오래된 사회과학도서는 고물상이나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폐점 준비를 마무리했다. 새날 서점이 있던 곳에는 다른 업종의 가게가 곧 문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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