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4월부터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극단 창작극회. 방문객들은 습관처럼 ‘꽁시랑 일기’부터 찾는다.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지 못하니까 홈지기가 될 수는 없잖아요. 전 그저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쫄자인 거죠.”
굳이 쫄자임을 강조하는 이는 연극배우 최지훈(29·전주시 태평동)씨. 창작극회 홈페이지에선 그가 연기한 ‘현식’(오월의 신부)이나 ‘광대’(말괄량이 길들이기), ‘작은 도둑’(마술가게)보다 ‘홈지기쫄자’라는 역할이 더 어울린다.
그가 올리는 내용은 자신의 신변에 얽힌 일기형식의 글이다. 연극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만큼 올리는 내용도 천차만별. 이래저래 쌓인 얘기들, 그때그때 바라본 세상을 차근히 풀어놓는다.
‘간만에 취했다’며 ‘취한 김에 하고 싶은 대로’너스레를 떨고 ‘벌써 아쉬워지는 겨울날’의 일상을 적기도 한다. 3년만에 찾은 포장마차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주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외상값까지 떠오르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그래도 이 집 고갈비맛은 그대로였다’고 끝을 낸다. 그의 글을 읽으면 속내를 들킨 듯 키득거리게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전 어쩌면 용기가 없었는지도…’라는 후배의 넋두리가 올라오면, 쫄자는 ‘니가 퍼붓고 있는 노력, 지금 사는 만큼만 가지고도 충분히 용기 있는 거야.’라며 후배의 손을 맞잡기도 한다. 그와 더불어 허물없이 늘어놓는 대화도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다.
달리기에서 늘 뒤쳐지는 그를 위해 결승선에서 로봇을 들고 서 계시던 어머니에 얽힌 추억이 담긴 일기는 이미 많은 네티즌의 감동을 자아내 인터넷 여러 공간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까지 쓴 일기는 게시판 운영 업체의 실수로 모두 사라진 상태. 자신이 출현한 작품의 소품까지 세심하게 간직하는 그이기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글을 써서 올렸다기보다 마음 그대로를 그려 놓은 거라서 추억을 상실한 것 같죠”
멋쩍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애써 눈길을 돌리는 그는 지난해 가을, ‘연극을 통한 따뜻한 세상 만들기’라는 창작극회의 새로운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했다.
“다시 쓸려고 몇 번쯤 새 일기장을 들썩거려 보기는 했지만 단 한 줄도 써지질 않아서 덮어놓고, 덮어놓고 했어요.”
그의 궁시렁 일기는 두어 달의 공백 끝에 ‘또 뭐가 마음에 쌓여 덥석 펼쳐들었는지 몰라도 아무튼 손가락 근질근질한 건 사실’이라는 글로 다시 시작돼 ‘빈 소주병이 세 병, 네 병 쌓여가듯’ 올려지고 있다.
‘맘도 바쁘고 몸도 보대껴서’ 한참 글을 올리지 않기도 하지만 ‘스스로 외면 받지’않기 위해 오늘도 그는 좌판을 두드린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