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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게릴라] 다문 사람들



점심에 맞춰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18일 오후, 전주시 교동의 문화공간 다문(茶門)은 한가로웠다. 한옥지구의 품안에 안긴 이 곳은 딱히 인위적으로 덧칠하지 않았으면서도 푸근하고 정겹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문이 우리 전통문화를 되새김질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시험장임은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이름값이 넉넉하다.

 

그러한 다문을 빚고 다듬는 사람들, 멋스런 전통의 맥을 되짚고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작업에 팔소매를 걷어부친 이가 ‘다문사람들’이다. 단순히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문화적 향유를 넘어 이를 문화운동으로 연결짓는 지역문화의 지킴이들이자 전주 특유의 ‘안주하는 문화’에 딴지를 거는 문화게릴라들인 셈이다.

 


지역문화판의 주변인이기보다는 참여하는 실천가들인 이들은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찾고자 하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만큼 그동안 우리 문화에 쏟은 공력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매월 문화토론이나 강좌를 열었고, 찻집에 전시공간을 마련해 매달 한작가를 초청해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는 행사들이 이들 모임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차문화 보급과 산조예술제가 가장 대표적. 차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차씨심기, 차따기 등의 행사를 열고 전통차 보급운동을 벌여왔고, 지난 2000년에는 오목대에서 대규모 차나무 군락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전통차에 대한 오랜 관심끝에 차밭 조성을 위해 부지를 물색해 오다 오목대에서 2백여그루의 차나무 군락지를 발견한 것. 이에 그치지 않고 차밭을 본격적으로 조성하고 오목대 차나무를 관광자원화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그리고 다문을 얘기할 때 산조예술제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99년 고고성을 터트리고 해마다 교동한옥지구의 가을밤을 물들였던 산조예술제는 산조의 자유정신과 지역정서가 절묘하게 결합한 축제한마당으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관이 아닌 민이 주도하며 맹목적인 대형화나 단체장치적요으로 전락하고 있는 지역축제에 대한 경종을 울려줬다.

 

이밖에도 놀이패 십시일반을 운영하며 ‘회원들의 단원화’를 꾀하는가 하면 자치단체의 문화정책에 대해서도 여론들을 모아내고 반영할 수있는 통로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다문사람들은 누굴까. 다문대표인 박시도-정정숙씨부부와 전통문화사랑모임 회원, 산조예술제 관계자들을 꼽을 수 있다.

 

다문사람들의 모태는 교사, 공무원, 주부, 학생, 교수, 언론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1백5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전통문화사랑모임.

 

지난 95년 문화예술계와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당시만해도 전주시 고사동에 있던 전통찻집 ‘다문’을 중심으로 매월 작은 국악음악회를 열었고, 문화에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한 사랑방토론회와 강좌를 마련했다.

 

지난 98년 10월 시내한복판에서 전주시 교동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찻집 뜨락에서 문화패들이 여는 공연행사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전통과 관련된 조촐한 전시도 마련해오고 있다.

 

다문사람들은 앞으로 전통문화의 생활화를 더욱 체계화하고 전주시로부터 수탁한 한옥체험관과 주조박물관 운영에 매달릴 계획.

 

다문사람들의 중핵은 전통문화사랑모임대표와 산조예술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동엽씨(55)다.

 

전통문화사랑모임의 전신인 풍물패 ‘갠지갱’의 창립회원이자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동안 지역문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그는 전북문화저널의 2대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지역문화계의 마당발이자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맏형으로 통한다.

 

다문대표 박시도씨(38)는 “다문사람들은 열어놓은 판에 참여하기 보다는 판을 직접 열 수 있는 활동이나 사업에 나서고 있다”면서 “차문화보급도 전통문화되살리기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옛것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문화에 대한 애정의 시작”이라는 전통문화사랑모임 회원 이승희씨(44)는 “선조들의 농익은 문화의 소중함을 가꿔갈 줄 모르고 빨아먹기만 급급한 사람들은 ‘문화기술자’에 불과하다”며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점을 강조한다.

 

문화관광마케팅 전문가인 김순석씨(40)는 “다문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며 “문화는 곧 삶이라는 생각으로 우리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이면 다문에 둘러앉아 흥겨운 한마당을 연다. 오는 23일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봄을 재촉하는 ‘산조야(散調夜)’를 마련한다. 이날 전주시립국악단 전단원인 최병호씨가 피리 렉처콘서트를 열고 멋과 흥이 어우러지는 신명난 자리를 펼쳐낸다.

 

다문사람들이 천착하는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시 한뼘씩 주변으로 그 향기를 넓혀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지역을 바꾸는 문화운동의 결정체가 아닐까한다.

 


전주산조예술제 오종근 사무국장

 

#1. 90년대초 전북대 인근의 한 카페. 지역에서는 드물게 록그룹의 라이브콘서트가 한창이다. 열광하는 20대초반의 젊은이들 틈에 끼여 30대초반의 남자가 이들과 함께 환호하며 어깨를 마주친다.

 

#2. 2001년 10월 전주시 교동에서 펼쳐진 산조예술제에서도 그가 있다. 발디딜틈도 없이 몰려든 관객들을 헤집고 묵묵히 무대를 만드는 일에 열중이다.

 


전통문화사랑모임 회원이자 전주산조예술제 사무국장인 오종근씨(40)는 다양한 경력이 눈길을 끈다. 90년초대에는 록그룹의 공연장을 겸한 클럽을 운영했고, 이제는 우리 것을 되살리는 작업에 전력하고 있다. 다문사람들 가운데 가장 헌신적인 일꾼 가운데 한사람이기도 하다.

 

“다양한 경력을 통해 ‘우리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다”는 오국장은 “새로운 문화는 결국 소비에 불과하고 우리것과 결부된 문화라야만이 재창조와 정체성찾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릴적부터 자아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장르를 접하는 계기가 됐어요. 한때 전주에 록카페를 열었던 것도 새로운 문화를 심어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것이 담보되지 않은 문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전통문화에 대한 해석과 함께 ‘잊어버린 나를 기억해서 잃어버린 나를 찾자’라는 진리를 되새기게 됐죠”

 

오국장은 자신을 비롯한 다문사람들의 작업은 ‘물꼬를 트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분야에서 새로운 뭔가를 빚는다는 일은 어렵지만 보람있는 일”이라는 그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은 우리 문화에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국장은 이를 위해 20대∼30대 젊은이들이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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