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오명창시대는 19세기 말기부터 20세기 전반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활동한 사람 중에서 오명창으로 언급되는 사람은 박기홍( ? - ? ), 김창환(1854-1927), 김채만(1865-1911), 송만갑(1865-1939), 이동백(1867-1950), 김창룡(1872-1935), 유성준(1874-1949), 전도성(1864- ? ), 정정렬(1876-1938) 등이다. 팔명창도 그렇지만, 오명창도 역시 꼭 다섯 명만은 아니다. 사람마다 꼽는 사람이 달라서 이렇듯 아홉 명이나 된다. 그러나 아홉 명만으로 이 시기의 판소리를 다 얘기할 수도 없다.
이 시기에는 극장이 생김으로써 판소리의 연행 공간도 변하였고, 여자 소리꾼들이 다수 배출되어 판소리가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하였다. 창극과 병창이 생겨났으며, 유성기라는 기계가 들어옴으로써 기계를 통하여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시기의 소리꾼들은 많은 음반을 남겼다. 그래서 이 때부터 판소리사는 누가 어쨌다는 소문의 차원에서 구체적인 소리라는 실물이 존재하는 명실상부한 역사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판소리사는 이 시기의 소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가령 동편제 소리가 어쨌다거나, 중고제 소리가 어쨌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이 시기의 소리꾼들의 소리를 모델로 삼아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스타라고 일컬을 만한 소리꾼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화중선이나 임방울과 같은 스타 소리꾼의 등장은 이 시기의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협률사’라고 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장을 치고, 청중들을 모아 돈을 받고 공연을 하는 형식도 이 때 만들어졌다. 아무튼 이 시기에는 혁명적인 사회문화적 변화가 있었고, 이 변화에 적응하면서 판소리도 변화했다. 그렇게 해서 판소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시기를 판소리의 쇠퇴기로 보기도 한다. 어찌 보면 20세기 이후 판소리는 쇠락의 길을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시기 전부를 쇠퇴기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이 시기에는 가장 많은 소리꾼들이 활동을 했다.
또한 가장 많은 청중을 확보하면서 흥행물로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또 병창, 창극 등으로 장르확산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쇠퇴기로 단정지을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쇠퇴 직전의 최고의 전성기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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