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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說에 묻힌 '천재 소리꾼' 진실 밝혀내 생명력 찾아



국창이란 칭호를 받을만큼 빼어났던 당대 최고의 명창 임방울은 판소리 사상 가장 성공한 소리꾼으로 꼽힌다. 불운한 시대를 살면서도 타고난 재능과 치열한 예술정신으로 자신의 생애를 오롯이 바쳐 판소리의 대중성을 이루어낸 덕분이다.

 

그의  대중적 인기가 얼마나 높았을까를 짐작하는 일은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는 명창 임방울에 관한 숱한 이야기들과 전설적 일화들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구전에 의존하고 있어 허구적이거나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실증적연구를 바탕으로 한 임방울의 생애와 활동을 정리한 글이 발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이 글은 임방울의 데뷔시기, 출생과 사망시기, 그의 창작품이라고 알려져온 ‘추억’의 진실 등 설화적 이야기를 바로 잡는 내용들로 임방울의 생애 뿐 아니라 판소리 연구에 새로운 진전을 제시하는 성과로 보여진다.  

 

이 글을 발표한 사람은 판소리연구가 군산대 최동현교수.

 

최교수는 “지금껏 임방울에 관한 이야기는 엄격한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천재적인 소리꾼에 대한 설화적 관심이 만들어낸 것이 많다.”며 “ 물론 그것들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설화적 표현을 사실인 것처럼 오해하는 데에 있다. 그런점에서 사실에 입각한 엄격한 생애의 복원작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임방울은 출생시기나 사망날짜조차 명백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출생시기도 1904년과 1905년 등 두가지 설이 있고 사망날짜도 들쭉 날쭉이다. 데뷔시기도 스물다섯살때로만 밝혀져 있을 뿐 이때가 언제이고, 어떤 경로로 데뷔했는가에 대해서는 그 배경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교수는 임방울이 1905년 출생이고, 1929년 15일이나 16일에 임방울의 데뷔무대가 동양극장으로 알려져 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첫무대는 광무대나 매일신보사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주장한다. 

 

임방울의 데뷔무대는 판소리사를 정리하는데 중요한 초점이 되는 대목이다. 동양극장은 1935년 11월 1일 서대문구 충정로에 신축된 극장. 이미 임방울의 나이  서른살이 넘었을때로 데뷔한지 수년이 지난후인 셈이다.

 

임방울은 일반적으로 외숙인 김창환의 소개로 무대에 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감안할 때 1929년 9월 12일자와 13일자 매일신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최교수의 주장이다.

 

이날 신문에는 같은해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매일 저녁 7시 반부터 매일신보사가 후원하고 무명회가 주최하는 ‘조선명창 대연주회’가 매일신보사 누상 내청각에서 열린다는 광고가 게재되어 있다. 이 신문자료는 김창환이 1927년에 사망하였다고 되어 있는 일부 기록(박황의 ‘판소리 200년사’)에도 오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특히 전설적인 일화로 전해지는 임방울의 ‘추억’을 둘러싼 내용은 주목을 끈다. ‘추억’은 임방울이 자신을 사랑했던 김산호주라는 여인을 위해 지어 부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 한편에서는 당시 이름났던 명창 이화중선이 일본에 음반을 취입하러 갔다가 배가 가라앉아 죽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임방울이 그를 슬퍼해 즉흥적으로 지어 그의 상여뒤를 따라 가며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최교수는 이 또한 실증적인 자료 없이 구전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제기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193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추억’은 이미 단가 ‘편시춘’과 함께 같은 음반에 녹음되어 1932년 10월에 콜롬비아를 통해 발매되었다는 것.

 

최교수는 가사 역시 임방울의 순전한 창작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며 이미 단가의 형태로 전해졌던 이 노래를 개작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밝히고 있다.

 

최교수는 1961년 3월 7일, 8일, 10일로 서로 달리 정리되어 있는 임방울의 사망날자도 3월 7일 자정을 전후한 시간이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교수의 이 논문은 국창임방울선생기념문화재단이 발간한 ‘국창 임방울 선생의 생애’에 실려 처음 소개되었으며 올해 다시 내용을 보완해 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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