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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게릴라] 동문거리Pan

 

 



주인이 바뀌어도 상호는 그대로인 거리
맛이 바뀌어도 단골의 발길은 여전한 거리
이 거리를 걷고있는 여섯 남자가 있다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끝내 찾아하는
서로의 꿈을 맞잡고 걸음을 내딛는
이 거리가 먼저 알아보는 젊은 문화인들이다
거리의 문화와 역사를 뒤집어 헤아리는
동문거리 같은 사람들
그들을 주목한다

 

 


행위예술가 심홍재씨(40)를 비롯한 ‘동문거리Pan’여섯 남자. Pan은 잊혀져가는 거리에서 전통과 동시대의 상상력, 현실의 충돌과 긴장을 통해 인간과 터전에 대한 종합적 관심을 드러낸다. 퇴색한 사물을 은은한 향수로 녹여내는 작업에 의기투합한 사람들.

 

Pan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성기석씨(31)는 자신들의 만남을 “동문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스치듯 만난” 인연이라고 소개했다.

 

서점 한 귀퉁이에 쪼그려 손때 켜켜이 묻은 책을 펼치며, 멸치 몇 마리 놓고 술 한잔하다, 쓰린 속을 콩나물국밥에 맡기며, 골목골목 이어진 길을 따라 몇 번이고 마주치다, 쓰윽, 한번 웃어버린 사람들. “자연발생적이죠.”성씨의 말이 어색하지 않다.

 

이지역 퍼포먼스의 선두주자인 심홍재씨를 비롯, 이들의 삶은 예사롭지 않다. 한옥체험문화관(준)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김병수씨(35)는 92년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줄곧 서울경실련에서 도시계획분야를 담당하다가 낙향(?)했고, 편집장 성기석씨도 전주국제영화제와 시민영화제, 전북문화개혁회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웹운영과 소책자 제작을 담당하는 유상우(30) 한천수씨(30)는 오랫동안 전북청년문학회에서 활동해와 알만한 이들에게는 이름을 알린 글지다. 지난해 시민영화제에 ‘오각’이라는 단편을 출품했던 김광희씨(25)는 동문거리 다큐제작을 책임진다. 이들 모두 동문거리 한 귀퉁이에서 봤을만한 사람들이다.

 

“저는 각자의 목소리가 어울릴 수 있도록 조율만 합니다.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욕심껏 일하되 서로 결합하는 코드를 살리도록 만드는 것이 제 일이죠.”

 

Pan의 맏형 심씨의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한결같은 목표가 있다. ‘동문거리축제’를 통해 동문거리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찾아내는 것. 소시민의 삶을 거리에서 풀어내고 거리에서 나오는 역사를 담는, 이를테면 전북문화의 틈새공략이다.

 

그들은 동문거리가 생산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동문거리신문’을 통로로 동문거리 사람들끼리의 소통을 제안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낡고 희미한 선율이 감싼 신문을 통해 다양하고 원초적인 전통을 보여주고자하는 의지다. 이들은 거리의 특징과 역사를 축으로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동문거리지도와 동문거리에 묻어나는 삶을 엮은 소책자를 제작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담아낼 계획이다.

 

소박하지만 미래지향적인 거리미술을 보이려는 포부도 있다. 의욕적인 이들의 작업은 올해 월드컵문화축제의 한 테마인 동문거리축제로 이어져 마무리된다. 하나의 작업이 기존의 문화질서에 자극을 주고, 그럼으로써 사회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관점를 제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것의 존재가치는 충분할터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 동문거리 Pan(판)이 주목을 모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Pan은 웃음으로 답한다. 이 정도의 궁핍함에 좌절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오히려 자유로운 담론의 가능성을 경제적인 어려움과 바꿀 수 있다면 두말없이 받아들이겠다는 표정들이다.

 

동문거리축제를 위해 모인만큼 축제가 끝나면 Pan은 해체할 생각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좋은 발상을 말한다면 우리는 다시 뭉칩니다. 그렇다고 내년 동문거리축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거리는 곳곳으로 이어져있고 우리의 발상도 무궁무진합니다.”

 

나팔꽃이 드문드문 피어날 무렵, 이들은 동문네거리 한 중앙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발을 먼저 내딛을지, 어느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득 서로가 한쪽을 향하면 그들 모두 머뭇거리지 않고 그 쪽으로 발을 디딜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저 반가워 끄덕거리는 나팔꽃도 지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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