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조금 멀리 걸어가면 오래 되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 집에 오가며 그 나무를 봤다. 그 때 친구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이 나무에는 사연이 참 많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커다란 나무는 그 마을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나무 밑에서 놀곤 했다. 나는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바퀴나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아마 바퀴같이 생긴 타이어가 그 나무 아래에 많이 박혀있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나는 운동 신경이 둔해서 친구들에 비해 그 나무에 올라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 나무를 타곤 했다. 그 나무 위에서 마을이 보이고 멀리 희미하게 우리 집까지 보이면 웬지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무는 나에게 한 마디씩 해주는 듯 했다. 조용하면서도 은근한 이해심 같은 것 말이다.
그 나무 아래는 친구들과 나의 모임 장소였다. 그 곳에 가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으며 또 다른 친구인 나무가 있었기에 난 항상 그 곳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여름방학이 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놀곤 했다. 밤이 되어 하늘을 보면 그 나무는 나에게 항상 무언가를 속삭여 주었다. 차분하고도 따스한 말들로 내 가슴은 가득 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도 철이 들었다. 나는 그 곳에 잘 가지 못했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나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나의 바퀴나무는 언제나 나에게 속삭여 주듯이 말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은근하고 따스한 말과 이해심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요즘엔 잘 가지 못하지만 나의 바퀴 나무는 언제나 나의 마음 속에, 나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이고 늘 나를 바라보아 줄 것이다.
/ 황준승 (이리고등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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