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열 한 개의 크고 작은 다리를 지나 용을 담은 호수, 용담호(龍潭湖)를 가르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한다. 이 아침의 웅장한 광경과 상쾌한 공기는 새벽잠을 설치고 일찍 출근해야만 하는 고충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해마다 교원 인사철이 되면 ‘아직도 그 촌구석에 있어? 이제 좀 나와’라는 말을 으레 듣지만 나는 십 년이 넘게 이 길을 다니고 있다.
아이들과 진달래꽃 따고, 쑥 캐서 떡 해먹고 다슬기 잡아 삶아 먹었던 안천중과 동향중에서의 추억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늘 처음처럼 힘을 주곤 한다. 과학반 아이들과 수 백 마리의 돌좀이 붙어 있는 장소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좀벌레를 채집하러 폐가마다 돌아다니다가 빈집을 턴다고 신고 전화를 받은 일도 있었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채집통이 엎어져 사정없이 튀는 돌좀을 잡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좀벌레’ 선생인데, 나의 항의에 ‘좀벌레의 여왕’으로 승진하여 어디든지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그보다 더 먼 용담중으로 왔다. 대영, 민상, 현지, 슬기, 기혁, 은진, 민재, 민영, 지훈, 선이, 슬아, 실이. 교사 아홉 분에 학생 열 두 명이라. 축구부 한 팀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한 산간벽지학교의 아이들과 지난 해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얼마 전 기혁이가 전학을 왔는데 ‘학생수가 늘어서 교실을 증축해야겠다’는 교장선생님 농담에 한바탕 웃었다.
오늘은 내 차에 2학년을 전부 태우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어 대며 용담댐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이 기분을 그 누가 알까. 요즘은 과학교사 연수에서 배운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프로그램으로 과학 노래 부르기를 시작했다.
과제가 힘들기도 할텐데 우리 아이들은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기꺼이 참여한다. 이 아이들과 더 열심히 과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갈수록 업무에 시달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으니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와서 박사학위 수여를 축하해준 아이들, 이들 덕분에 돌좀目 5新種과 1未記錄種을 학회지에 발표할 수 있었다. 식탁 위에 맛있는 요리 대신 좀벌레 상자가 놓여 있어도 나를 이해해준 남편과 아들딸에게도 감사하지만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진안의 아이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로 남을 것이다.
이제 탁구장에 올라갈 시간이다. '선생님, 한 껨 하게요', '손 좀 봐주겠다는 거여?' 우리 교사들끼리도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웃음소리가 학교 담장을 넘도록 신나게 탁구를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관찰하고 벌레를 찾아다니며 씩씩하게 살 것이다.
용담호 주변에 수줍게 피어있는 진달래같이 너무도 예쁜 용담의 아이들이 바르고 곧게 자라서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 최금희 (진안 용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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