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5여년 전에 4학년을 담임했을 때 일이다.
넷째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올 때 숨가쁘게 달려온 학생이 큰일이 난 것처럼 말을 했다.
“아이들 세 명이 산에서 놀고 있으면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석부를 펴놓고 다시 한번 이름을 살펴보니 평소엔 말없이 얌전한 학생이었으나 최근에 가정에서 부모님의 불화로 마음이 삐뚤어져 결석이 많았다. 오늘은 착한 두 명의 학생을 인질로 잡고 학교로부터 500m 떨어진 앞산에서 중간학교를 설치한 것이다.
일차 학생을 보내 설득을 하여 오도록 하였으나 매만 맞고 돌아왔다. 할 수 없이 그 지역을 잘 아는 학생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군인 생활때 익혔던 작전술을 발휘하면서 현장을 점령 했을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사방은 초여름을 과시하듯 울창한 숲으로 가득차 있어 옆에 숨어 있어도 분간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숨을 죽이고 그 지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증거물을 찾기 위하여 30분 가량 헤매고 있을 때 전방 500m 지점에서 검은 머리가 움직였다. 목표물을 응시하면서 계속 접근했을 때 꿩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갔다. 그 소리에 놀라 아이들은 도주해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모처럼의 기회가 꿩의 방해로 실패하고 만 것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 주위를 맴돌면서“지금 나오면 용서해준다”하고 큰소리로 외쳤으나 허사였다.
할 수 없이 학부형에게 알려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찾기 시작했다. 문득 군인생활 당시 설악산 일대에서 출몰했던 공비 소탕작전을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의 심정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어디선가“여기 있다”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그 장소로 즉시 달려가 본즉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것을 포위 당한 자로서 체념한 탓일까? 그 학생은 두 명의 학생을 끌어안고 뽕나무 숲속 깊숙한 곳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숨어있지 않겠는가?
나의 얼굴을 쳐다보던 학생 두 명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체 하더니 무릎을 꿇고 용서해 달라고 했다.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가정에서 부모님이 매일 싸우고 있어 날마다 불안해서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후 착실한 학생으로써 부모님의 싸움도 아랑곳 없이 학교에 꾸준히 나오는 것을 보고 그때의 작전이 한 학생의 인생길을 바로 잡아 주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 하였다.
이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학생은 어엿한 1남1녀의 가장으로서 행복한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매년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온 가족이 함께 찾아와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하는 그 제자의 됨됨이를 보고 30여년간의 교직생활 중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제자로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의 보람이 아닌가 싶다.
/ 김종술 (남원시 산내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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