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말이 들리는 창작 오페라가 탄생했다. 지금까지 외국 오페라를 우리말로 옮긴 것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 사람이 만든 우리의 창작 오페라들도 노랫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바로 그 고민이 5월 25일 전주 소리의 전당에서 속 시원하게 풀려버렸다. 호남 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동녘"에서 작곡가 이철우는 노랫말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을 음악에 그대로 옮겨 놓고,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노래 소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절제함으로써 우리 오페라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노랫말을 살리려다가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음악의 흐름에 굴곡과 매듭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넣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말고도 필요한 경우 음악없는 대사를 넣는가 하면 성격이 다른 두 인물이 레치타티보로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말하는 이가 바뀔 때마다 레치타티보의 음역과 빠르기는 물론이고 리듬까지도 다르게 처리하여 대조적인 성격을 부각시켰다.
거기다 오케스트라는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면 분위기의 전환을 이끌어갔는데, 특히 같은 동기를 적절하게 반복함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통일감을 주는 역할까지 했다. 징으로 서곡을 시작한 것도 적절했고 관기들이 춤판을 벌이는 장면에서 장고만을 쓴 것이나 동학군이 등장하면서 꽹가리 소리를 등장시킨 것도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단원의 감동을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합창으로 고조시키면서 결국은 객석의 참여까지 유도하여 절정에 이르게 한 것이 으뜸이었다.
출연진 모두가 고르게 뛰어난 기량을 선보여 소리의 고장 전주의 저력을 과시했고 특히 전봉준 역을 맡은 바리톤 김동식의 소리가 인상적이었고 덕쇠 역을 맡은 테너 최재윤의 열창이 두드러졌다. 무대 장치를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의상에 비교적 많은 공을 들인 것이나 전반적으로 극의 전개를 빠르게 가져간 것도 높이 살만한 일이지만 2막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4막처럼 2막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아니라 합창으로 그 끝을 장식했어야 했고 그렇다면 당연히 낭자군의 합류나 김경천의 투항을 앞에 두고 전주성 함락을 뒤에 두었어야 했다. 전반적으로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과 화해의 구조에도 신경을 썼으면 싶고, 관기들의 춤이나 농민들의 춤, 전투 장면으로 요약할 수 있는 볼거리도 좀 더 다듬었으면 싶다.
첫 술에 배부를 리가 없다.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둔 걸작 뮤지컬들도 작은 무대를 먼저 거치면서 고치고 또 고쳐서 완성된 것들이다. "동녘"만한 걸작을 지역 오페라단의 역량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서울로 가야 한다. 그래서 창작 오페라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 수 가르쳐야 한다.
-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