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동문들은 내년초 아주 특별한 행사를 갖는다. 법정대학 정치학과로 태동, 대학의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 해 온 정치외교학과가 학과 창설 반세기를 맞은 것.
해마다 1월중에 동문 신년하례회를 개최해오고 있는 동창회(회장 차광호)는 내년 2월중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들을 부부동반으로 모교에 초청, ‘정치외교학과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대학 기숙사를 이용, 1박2일 일정으로 치러질 이 행사에서는 정기총회와 함께 캠퍼스 투어 프로그램등을 통해 동문들이 발전된 모교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상호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농협 전북본부장을 역임한 천광석 현 전북대 총동창회장이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차광호 회장은 “지난 2000년 신년하례회때 5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 올해는 3개월단위로 이사회를 열어 준비사항을 협의하고 있다”면서 “개교 반세기를 맞는 내년을 학과 발전의 새로운 도약기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학과와 한지붕 아래서 출발, 상아탑의 기둥으로서 오랜 기간 그 뿌리를 함께 한 정치외교학과는 법학과보다 다소 늦은 1953년 정치학과로 신설돼 1957년 한승헌 전감사원장과 탁진환 전북대 명예교수등 27명을 제1회 졸업생으로 배출했다.
이후 1968년 학과명칭을 정치외교학과로 변경했고 1983년에는 사회과학대학으로 그 소속을 옮겼으며, 학부제 도입에따라 1999년부터 정치사회학부 정치외교학 전공으로 개편됐다.
이 과정에서 1962년 5·16 군사쿠데타로 학과가 1년동안 폐지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졸업생들은 법조계와 관계·학계·언론계·금융계등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학과 1회 졸업생 한승헌 전감사원장(변호사)이 전국적인 명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대학의 위상을 크게 높였고 이형로씨는 군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변호사는 공직 퇴임후 서울에서 법무법인 광장 대표로 활동하면서도 전북대 발전후원회장과 전주역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등을 맡아 수시로 전주를 오가고 있다.
언론계와 학계에서 동문들의 활약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언론계에서는 김재금 전북일보 논설위원과 백성일 전북일보 편집국장·이흥래 전주문화방송 군산본부장·장기철 KBS기자·김은태 CBS전북본부 부장등이 각 언론사에서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다.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군산시장 후보로 나섰던 황이택씨도 전북일보 편집국장 출신. 또 전북일보 수석 논설위원을 지낸 김홍철씨를 비롯, 1980년 졸업동기인 조남일·김화욱·윤승호씨도 언론사 중견기자 출신이다.
학계에서는 탁진환 명예교수를 비롯, 신환철교수와 이중호·신기현·김창희교수등이 모교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박동수(전주대)·이병렬(우석대)·이목훈(호서대)·손병선(순천대)·오세윤교수(호남대)도 강단에 서고 있다.
또 1963년 졸업생으로 학과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차광호씨(주식회사 금산)와 송기인(주식회사 동성)·윤여식(주안건설)·김충근(데코월드)·김동심(주식회사 국일)·권혁성씨(혁성상사)등은 튼실한 기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이밖에 채진묵 전 고창부군수에 이어 김학윤 감사원 감사관·이형주 보건복지부 국장등이 관계에서 맹활약하고 있으며, 이용의 전주중앙여고 교감등 중·고교 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 나의 대학시절 - 이병렬(우석대 교수·1980년 졸업)
대학을 다녀본 사람이면 누구나 캠퍼스에서의 추억과 회한이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필자는 10여년이라는 긴 대학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청춘기에 여러가지 어리석은 일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은 중년이 되어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미리 안 것처럼 많은 방황과 혼돈의 가치관속에서 정착한 학과가 정치외교학과였다.
내년이면 학과 창설 50주년을 맞는 역사의 중간점에서 보낸 대학시절은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아쉬움과 불운한 환경의 연속선을 긋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섯번째의 공화국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중에 네번째 공화국의 기간(1972∼1979년)과 거의 겹치는 열악한 조건속에서 정치학이라는 사회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움이 많았다.
헌법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언론·집회·결사·표현의 자유는 왜곡된 채로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대학생활은 시위와 데모로 점철돼 있었다.
유신헌법체제하에서의 학문적 접근은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취업의 복이 없는 시대적 환경속에서도 우리는 뜨거운 물리적·정신적 저항속에서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성실한 자기관리와 스포츠에 몰두하면서 보낸 시간들로 말미암아 오늘날 학계를 비롯한 언론계등 전문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70년대 법정대학을 다녔다해서 만들어진 ‘칠법회’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또 3년동안의 과대표 활동을 통해 끈끈하게 맺어진 우정과 어려움을 이겨낸 동지적 인연속에서의 꾸준한 만남은 큰 자산이기도 하다.
이제 장년의 모습으로 커간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이상적 과제속에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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