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6:55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전북연극 40년, 그 부침의 세월] (2)8~90년대 전북 연극사

 

 

전북연극은 80년대에 이르러 그동안 축적해온 탄탄한 바탕과 자산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86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세번이나 수상(86년, 89년, 93년)할 정도로 역량을 과시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연극 활동의 기반을 넓히는 중요한 바탕으로 작용했다.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면서도 지역연극의 활로를 열어온 민간극단, 관립 극단의 탄생, 소극장 무대의 정착, 실력있는 연출과 배우, 연극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 등이 뒤를 이으면서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박동화 문치상으로 이어져오면서 전북연극판을 주도해온 창작극회의 독주를 끊은 것은 전북연극협회 박병도회장 등 당시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만든 극단 ‘황토 레퍼토리시스템’. ‘황토’는 불과 창단 7년만에 50회 공연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고 다섯 차례나 본선 진출한 전국연극제에서 ‘물보라’(1986)와 ‘오장군의 발톱’(1989)으로 두차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특히 연극전용극장인 황토예술극장(1986)은 1986년부터 3년간 연중무휴 공연을 펼치며 견고한 입지를 쌓아 창작소극장(1990)과 더불어 지역내 소극장문화를 세우는데 일조했다.

 

‘황토’는 80년대 전북연극을 대표하며 젊은 연극지망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만큼 황토예술극장과 지난 달 재정압박 등의 이유로 문 닫은 군산 사람세상소극장의 폐관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황토’(전주·1982)의 창단 이후 ‘둥지’(남원·1986) ‘토지’(익산·1987) ‘작은소·동’(익산·1995) ‘까치동’(전주·1995) ‘명태’(전주·1997) ‘하늘’(전주·1997) ‘사람세상’(군산·1998) 등이 창단하면서 전주 독주의 연극판이 지역으로 그 활동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동구, 최솔씨 등 14명의 단원으로 익산에서 시작된 ‘토지’는 창단공연 ‘환절기’에 2,5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자발적인 문화동력으로 이후 지방에 창단된 극단들의 본보기가 됐다.

 

이외에도 주부극단 ‘개나리’를 비롯 ‘디딤 예술단’‘불꽃’‘연희단 백제후예’‘푸른 숲’ 등 수많은 극단들이 창단됐지만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지 못해 문을 닫는 악순환은 거듭됐다.

 

80년대 중반 주목할만한 일은 1986년 전주시립극단 결성과 이로 인한 일부 극단의 ‘개점휴업’이다. ‘창작극회’와 ‘황토’ 등 민간극단의 핵심세력들이 안정적인 수입원이 보장된 관립극단으로 대거 몰리면서 민간극단의 활동이 위축된 것.

 

그러나 시립극단이 창단되면서 전문연극인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장성식 정초왕 안상철씨 등 상임연출을 거치면서 적잖은 연극인들이 중견으로 성장해가는 기틀을 제공했다.

 

80년대와 90년대 전북연극을 이끌었던 주역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황토 대표를 오랫동안 역임했던 박병도씨와 창작극회의 명성을 다시 찾아놓은 곽병창씨의 활동은 돋보인다.

 

물론 이들외에도 창작극회 초반부터 지역연극판을 떠나지 않았던 신상만씨나 전북연극협회를 주도했던 김기홍 강택수씨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어찌됐든 전주시립극단은 전북연극판에 중견연극인의 정착이라는 적지 않은 성과를 가져왔다.

 

자연히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 중에는 전북연극의 역량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이 많다. 박병도씨가 연출한 극단 황토의 ‘오장군의 발톱’, ‘물보라’라가 여기에 속하고, 곽병창씨가 연출한 창작극회의 ‘방디기뎐’(1991)은 작품에 삽입된 노래를 창작 판소리로 작곡, 연희판으로 재구성해 큰 호평을 얻었다.

 

역시 곽병창씨가 연출한 ‘꼭두 꼭두’(1993)는 놀음을 도입, 춤과 놀이·인형·재담을 한데 엮어 전국연극제 대통령상과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같은 시도는 국악뿐 아니라 재즈와 행위예술 등으로 확대되면서 꾸준히 변화·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끊임없이 지적된 문제는 ‘전문 희곡작가 부족으로 인한 창작극의 부재’다. 작품의 빈곤은 삶의 의미를 질문하는 높은 수준의 창작극을 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 것.

 

그동안 일부 작가의 글이나 공동창작, 기존 작품의 재해석 등을 통해 몇편의 창작극이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지만 수요에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 번역극이나 서울중심의 연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연극인들은 스스로의 한계로 지적한다.

 

따라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연극행위 전반에 걸쳐 연극인 스스로 점검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것. ‘연극은 자기를 객관화시키는 수양과정’이란 명제는 올해 전국연극제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맞을 전북 연극계의 자각과 맞물릴 것으로 예상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