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왕자로 이국땅에서 파란판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일연스님(1589∼1665).
한평생 진리의 삶을 산 스님은 비운의 왕자에서 일본의 성인으로 거듭나 오늘날까지도 추앙받고 있다. 양은용 교수의 도움말로 일연스님의 일생을 소개한다.
일연은 1589년 선조의 큰아들인 임해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9월 아버지 임해군과 함께 함경도 회령에서 두살 위의 누나와 포로로 잡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넘겨졌다.
이후 임해군은 풀려났으나 그는 누나와 함께 현해탄을 넘어 70여년간의 억류생활을 시작한다.
왕자는 13세때인 1601년 일련종 계통의 절인 법성사(法性寺)에서 출가해 ‘대응(大應)’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일련종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교토 본국사(本國寺) 구법단림(求法檀林)에서 불교교리를 공부한 후 정식 학승(學僧)이 된 스님은 치바(千葉) 반고사(飯高寺) 반고단림(飯高檀林)에서 심도 있는 교육과정을 마친 후 가관원(可觀院)이라는 당호와 고급과정을 마친 승려들에게 주어지는 상인 칭호를 받는다.
1609년 조국에서 날아온 아버지 임해군 살해 소식에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꺾은 일연은 포교와 수행에 더욱 몰두한다.
그 결과 26세의 나이에 일연종 창시자인 일련상인(日蓮上人, 1313∼1212)이 태어난 치바의 탄생사(誕生寺) 제18세를 역임하면서 사실상 일연종을 대표하는 인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후쿠오카에 용잠사(龍潛寺)를 건립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화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교화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던 중 막부정권과의 타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42세 때인 1631년 모든 직책을 그만두고 후쿠오카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후쿠오카의 번주 쿠로다(黑田忠之)가 스님에게 귀의해 향정사(香正寺)를 지어 바쳤으며 72살 때 “조국 조선 땅이 보이는 땅에 거주하고 싶다”는 스님의 뜻에 따라 해복산(海福山)에 묘안사(妙安寺)가 건립된다.
1665년 1월 26일 일연 스님은 끝내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77세의 나이로 입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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