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덤풀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 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풀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 꽃덤풀은…
석정(夕汀) 신석정(辛錫正·1907~1974)선생이 1946년 ‘신문학’에 발표한 서정시. ‘조국 해방의 기쁨’을 태양에 빗대 노래하고 있다.
모두 5개 연으로 구성됐으며 일제 강점하에서의 지하 독립투쟁을 비롯해 죽음과 유랑, 변절과 전향에 대한 안타까움, 식민 통치의 종말, 그리고 해방의 감회와 튼튼한 국가 건설의 기원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해방이후 처음으로 이념이 다른 전국 각지의 문인들이 함께 자리한 서울 모임에 참석했던 석정 선생이 참가소회를 시어로 옮겨 쓴 작품이다.
꽃덤풀을 낭송하는 김용택 시인은 “석정 선생이 시를 쓰셨던 시대적 상황이 전국 민족문학인 전주대회를 여는 요즘과 너무 닮아 있다”며 “문인들이 지녀야 할 시대적 자세가 결곱게 드러나 있는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많은 의미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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