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을 성큼 넘어 엊그제 절기상 ‘대설(大雪)’을 보냈다. 기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이제 변온동물들은 동면(冬眠)에 들어갔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동물들도 나름대로 추위를 피하거나 또는 적응하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까지 기록된 지구상의 곤충은 약 80만종에 달하며 전체 동물수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곤충만도 1만2천여종. 이 곤충들은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 종류와 개체수가 많은 만큼 겨울을 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곤충학자로 이름난 전북대 김태흥교수(생물자원과학부)가 ‘곤충의 겨울나기’를 소개한다.
땔감을 준비하는 등 과거와 같은 월동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김치를 평소보다 조금 더 담가 김장이라 부른다든가 겨울나기 옷가지를 챙기기는 할 터이다.
곤충에게는 겨울이 상당히 어려운 계절이다.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고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 추위에 대비하고 가장 안전한 형태로 새 봄을 기다리는 곤충을 종류별로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생물이 커가면서 모양을 과격하게 바꾸는 성장양식을 변태라 부른다. 올챙이를 생각하면 쉽다. 다 자라면 상당히 다른 생김새의 개구리가 되니까 말이다.
곤충도 변태를 하는데,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무당벌레와 같이 알·애벌레·번데기의 시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경우로 완전변태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매미와 같이 번데기 시기를 건너뛰어 성충이 되는 종류도 있어서 이들은 불완전변태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곤충은 1만2천여 종으로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겨울을 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대부분의 곤충이 알의 시기로 월동한다고 알고있고 또 틀린 생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벼메뚜기를 보자. 가을 짝짓기를 마친 어미는 논 바닥에 꼬리를 땅 속 2cm까지 내린다. 보온이 되도록 공기방울을 사이 사이에 끼워 꼭 스티로폼같은 거품으로 알집을 만드는데, 이 안에 1백개 남짓의 알이 들어있다.
겨울이 지나면 알은 서서히 발달하면서 6월초 부화하여 1령충 어린 것이 땅 위로 기어 나온다. 풀잎을 먹고 허물을 벗으면서 여름·가을을 자라면 날개있는 어른 벼메뚜기가 된다.
왕사마귀는 알집을 땅속이 아닌 풀이나 나무줄기에 붙이는 것이 다르나 월동과 이후의 성장이 벼메뚜기와 아주 유사하다.
단 짝짓기를 할 때 사마귀는 암놈이 수놈을 잡아먹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어쩌면 끔찍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곤충생태학자들은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는 받아 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제물습성은 거미류에도 나타나는데 어차피 겨울을 나지 못하고 곧 얼어죽을 몸이다. 먹이감이 흔치않은 계절, 아직 산란이라는 대사가 남아있는 암놈에게 자신을 내주어 후대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본다.
곤충이 그렇다고 알로만 봄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장수풍뎅이는 애벌레, 호박과실파리는 번데기로, 비단노린재는 성충으로 각각의 월동태가 정해져 있다. 모두 나비목에 속하나 어스랭이나방은 마른잎새 아래서 알로, 조명나방은 옥수수 줄기 속에서 유충으로 겨울을 난다.
또 배추흰나비는 허리에 띠두른 번데기로, 멧노랑나비는 바람적고 양지바른 나무 틈에서 색바랜 성충으로 겨울을 난다.
그러면 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수서곤충은 어떨가? 이들도 육상에서 살아가는 곤충과 마찬가지로 종류에 따라 각각 알·애벌레·번데기·성충 모두의 모양으로 겨울을 보낸다.
실잠자리는 풀줄기 속에서 알, 무늬하루살이는 돌아래 붙어서 애벌레, 띠무늬우묵날도래는 길쭉한 모래집 안에서 번데기, 물자라는 물바닥 밑에서 성충, 이런 식이다.
가능한 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외에도 월동중 곤충의 체색은 대체로 짙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태양볕을 이용해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생체 내부적으로는 결합수보다 자유수의 비율을 높이고 부동액과 같은 역할을 맡아 하는 그리세롤(glycerol)을 축적하여 영하의 날씨에도 몸이 얼지않도록 대비한다.
그런데 곤충은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계절변화의 감지는 기온의 하강, 먹이감의 생화학적 변화, 수분의 감소 등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은 낮의 길이다. 추분을 경계로 낮이 짧아지면서 내분비기관에 변화가 생겨 사람보다 훨씬 앞서, 이미 이때부터 겨울준비에 들어간다.
성충이 낮의 길이가 차츰 줄고 있음을 감지하면 월동준비를 직접하거나 월동태의 알을 낳고, 애벌레가 감지하면 월동준비를 하든지 번데기로 발육한 후 동면에 든다.
봄이 조용하다면 큰 일이다. 머리뿔가위벌과 애호랑나비가 날고 이들이 열심히 일해야 추후 풀과 나무에 열매가 맺는다. 노지에서 초여름에 자랄 때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겨울딸기를 생각해 보자.
제철아닌 하우스 안에서 키우는 경우, 별도로 꽃가루받이에 기여할 벌통을 들여 놓아야 딸기가 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우리 나라 배의 최대산지인 전남 나주에서도 자연의 가위벌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란다.
봄철 과수원에는 꽃가루 봉투와 붓을 들고 사람이 일일이 꽃가루받이를 한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외에 곤충이 생태계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또 무엇이 대신할 것인가.
겨울을 무사히 지낸 곤충들이 시끌벅적해야 꽃이 피는 의미가 살아나고 딱새·개개비·쇠딱따구리가 우리곁에 머문다.
만물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중에 사람도 설 자리가 있고 삶이 풍요롭다. 온전한 자연이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지도록 우리 모두가 환경 지키기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김태흥 교수 (전북대 생물자원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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