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얇은 관객층’을 한탄해야 했던 전북 서양음악계는 2002년 한해동안 ‘클래식 대중화’라는 씨앗을 뿌리고 가꿔, 관객들과 소통하는 통로의 폭을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관립예술단은 물론 민간 실내악단이 여느해보다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했고 성악가와 연주자들의 독창·독주회가 풍성하게 이어졌으며 소리문화의전당 등 각종 공연장에서 클래식 저변확대를 위한 기획과 노력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98년 창단한 도립오페라단이 해산, 지난해부터 이어지던 오페라 창작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페라 저변인구 확대와 예술진흥을 목적으로 창단된 도립오페라단은 도의회가 ‘창작활동이 미흡하고 예산운용 과정에 문제점이 많다’지적과 함께 ‘예산지원 중단’을 결정, 창단 3년만에 막내리고 말았다. 도의회는 오페라 불모지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도립오페라단을 경제논리로만 평가, 폐지한 것은 비문화적 의정활동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관립예술단 중 전주시립교향악단(지휘 박태영)의 활동이 도드라졌다. 지난 5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02교향악축제’에 참가, 수준높은 역량을 인정받았던 전주시향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를 초청, 피아노 협연무대를 열기도 했다.
‘도라지’등 북한곡을 활발하게 연주했던 시향은 지난 10월 북한 교향곡 ‘피바다’를 정기연주회 레퍼토리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북핵문제와 ‘언풍(言風)’에 부딪혀 추진 자체가 무산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전주시립합창단을 비롯해 군산시립교향악단과 정읍시립교향악단, 그리고 올해 창단한 김제시립합창단도 정기연주회와 순회공연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클래식음악 향유의 기회를 제공했다.
실내악단 등 민간단체의 활발한 활동과 연이은 창단은 국악 중심으로 움직이던 전북 음악에 있어 커다란 변화로 인식되고 있으며 성악가와 연주자들의 독창·독주회와 해외 유학파의 귀국무대도 전북 서양음악을 풍성하게 이끈 원동력이 됐다.
글로리아 스트링 오케스트라는 도내 중고교를 찾아가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통해 적극적인 관개계발에 나섰고 코러스목관앙상블, 아울로스목관앙상블, 한마음호른앙상블, 모이즈플룻앙상블, 성악아카데미, 남성합창단, 전주성악회 등이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2관 편성 60명 규모의 익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피아노 연주단체 ‘비르투오조’, 현악사중주단 ‘Joy of Quartet’, 그리고 전북트럼본앙상블이 올해 처음 창단했다.
올해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인 장르는 오페라와 피아노 연주다. 호남오페라단이 창작오페라 ‘동녘’, 바리톤 소극장이 중심이 된 전주소리오페라단은 ‘진채선’을 무대에 올렸으며, 전주대 음대는 3년만에 ‘사랑의 묘약’을 선보였다. 또 지역 성악전공자들로 구성된 ‘카메라타’가 오페라 연구와 대중화를 기치로 내걸고 창단,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동녘’은 기존 작품을 새롭게 각색했고, ‘진채선’도 지난해 창작된 작품이어서 올해 창작오페라가 줄어든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피아노의 선율도 음악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창단 10주년을 맞은 전북피아노듀오협회가 군산과 정읍, 익산 등을 잇는 순회연주회를 가졌고 ‘골드 핑거스’와 클라비어 듀오 연구회도 연주활동을 통해 피아노 저변확대에 기여했다.
소리전당을 비롯해 한솔문화공간과 바리톤소극장 등 초대형부터 소규모까지 각종 공연장은 서양음악의 풍성했던 활동을 지탱해준 기반이 됐다.
소리문화의전당은 우크라이나 키에브 섹소폰 콰르텟을 비롯해 안트리오, 춤추는 콘트라바스 등 국내외 유명 연주자나 단체를 초청, 다채롭고 풍성한 연주무대를 제공했고 한솔문화공간과 바리톤소극장은 클래식 감상회와 초청연주회, 기획공연 등을 꾸준히 마련했다.
2002월드컵 문화행사와 소리축제 등 대형 행사와 무대공연제작지원사업은 ‘메말랐던’ 전북 서양음악에 단비가 됐다. 40억원이 투자된 월드컵문화행사에서 전북 음악인들은 온고을 청소년음악회, 코리안뮤직 콘서트, 오페라무대 등 신명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냈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체코 보니푸에리 소년합창단과 필리핀 산미겔합창단 등 해외 유명단체들이 참가, 다채로운 무대를 창출했다. 또 올해 4억원이 넘게 지원된 무대공연제작지원사업도 서양음악 활성화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창작활동과 음악평론 부진, 그리고 공연무대가 아닌 학술적 측면에서 바라본 서양음악 활동 부재는 ‘클래식 대중화’결실의 의미를 반감시켰다.
이준복(전북대 교수) 김광순(전주대 교수)씨 등 일부 작곡가들의 작곡발표회가 열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신작 가뭄 현상’에 허덕였으며 서양음악의 발전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음악평론 또한 인력난을 겪으며 개척해야할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서양음악 세미나도 전주오페라단의 ‘스페인 음악세미나’와 전북음악협회가 연 세미나 등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어 학술적인 측면에서 서양음악을 활성화하는 계기를 지역 음악인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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