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구백팔십칠년의 작열하는 여름, 나는 전남 화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농촌 봉사활동 중이었다.
아직 덜 아믄 푸릇푸릇한 벼이삭들이 빼곡이 심겨진 논바닥 위에서 피사리 작업에 열중하다가 어느 순간 피와 벼가 혼재되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끈끈한 습기에 포박 당해서 그대로 드러누워 버린 하늘은 무심히 맑았다.
삶이란 다만 한 편의 로드픽션보다도 남루하고 부박할 따름인데, 하여 잠시라도 닦거나 매만지지 않으면 이내 삐거덕거리고 마는 집요한 일상 속에서 희망을 품는다는 건 얼마나 무모한 짝사랑인지.
예술이란 늘상 날 것 그대로인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현상이란 늘 본질에 선행하나니...., 문학의 본질이란 과연 무얼까하는 의구심에 내내 시달렸다.
이천이년의 겨울, 국도에서 당선소식을 접했다. 전북일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엉뚱하게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생각했다.
흠모하는 작가가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였다. 내 안에서 이제 그곳은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곳이다. 빈곤하고 나약한 소시민, 다만 반짝이는 아홉켤레의 구두로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내의 모습은 또 다른 나였다.
글을 쓰는 일이 내 안의 오랜 부채감을 아주 청산해주진 못하겠지만, 삶의 여정 속에서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건 또 다른 유토피아의 미래에 닿아 있노라고 믿기에 의심 없이 정진하련다.
모쪼록 큰 상을 허락해주신 심사위원선생님들과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내 부족함에 부쳐주신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내게 소설의 걸음마부터 조언해주신 정수남선생님과 희망을 보여주신 현길언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약력
1967년 서울출생
1990년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졸업
1998년 동대학원 졸업
2002년 교원문학상 (단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현재 서울 여의도여고 교사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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