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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스크린 달구는 본과 사랑의 매개 '꽃'

 

 

거리가 화사해지고 은은한 향기로 채워지는 지금, 봄은 알게 모르게 다가와 있다.

 

들뜬 마음에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사랑의 유혹을 이번엔 결코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도 괜스레 해보는 것이 인지상정.

 

이번 봄에는 김춘수의 詩처럼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이름을 불러줄' 그 누군가가 다가오지 않을까.

 

386세대나 N세대나 사랑의 메신저는 변함없이 '꽃'이다. 들풀 한 송이 꺾어 건네주던 70년대식 사랑에서, 분주한 현대인들을 위해 전화만 걸면 신호음처럼 빠르게 근사한 노래선물까지 곁들이고 가는 21세기 꽃배달 서비스의 횡행.

 

대통령조차 연인을 위해 리무진에서 내려 몸소 꽃집을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걸 보면('대통령의 연인'中), 건네주는 손끝의 떨림, 야릇한 흥분과 부끄러움으로 홍조를 띤 볼, 흔들리는 눈빛 등 '꽃'보다 꽃으로 전해지는'사랑의 느낌'에 더 가슴 설레지 않던가.

 

과거에 묻혀 살아가는 노부인을 식사에 초대했던 노인이 꽃다발을 바치는 장면도 인사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꽃다발은 언제나 친구 이상의 호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8월의 고래'中)

 

그래서인지 사랑에 빠진 꽃집주인은 그녀의 공간을 자신의 사랑으로 채우고자 부지런히 꽃바구니를 배달하고('미스터 플라워'中), 소녀는 꽃말처럼 애틋하고 순결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와 꽃에 담아 몰래몰래 그에게 전하고 있다.('카라'中)

 

크리스찬 슬레이터·매리 스튜어트 매터슨이 주연한 '미스터 플라워'(마이클 골든버그·1995)는 상처받은 두 남녀가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이야기다.

 

사랑의 애원과 연분홍빛 장미의 행렬이 보는 이의 가슴 가득 흐뭇함과 달콤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회색 빛 뉴욕과 붉은 장미, 순결한 백합 등 꽃들이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화면구성이 인상적이다.

 

후회로 얼룩진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멜로적인 사랑 이야기에 시간 여행이란 소재를 가미한 '카라'(송해성·1999)는 남몰래 사랑의 감정을 키웠지만 허무하게 죽어버린 옛 연인을 되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순수란 꽃말을 가진 카라는 사랑을 매개하는 꽃의 이름. 송승헌의 상대역으로 김희선·김현주가 출연했고 가수 이현우가 주제곡을 불렀다. 주제가의 애틋한 선율보다도 간절함이 없는 사랑이야기는 자못 씁쓸하다.

 

꽃으로 전하는 사랑은 '플래시 댄스'(애드리안 라인· 1983)와 '한낮의 사랑'(Love in the Afternoon·빌리 와일더·1957)이 인상적이다.

 

낮에는 용접공으로 밤에는 나이트클럽 댄서로 일하는 알렉스(제니퍼 빌스)가 명문 발레 학교 입학 시험에 훌륭하게 통과되고 난 후, 닉(마이클 누리)은 새빨간 장미 꽃다발을 전해 준다.

 

꽃다발을 받아든 여자는 그 중 한 송이 장미를 남자에게 준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꽃말의 붉은 장미로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오드리 햅번이 출연했던 '한낮의 사랑'는 겉으로 조숙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음악학교 여학생의 풋사랑이 소재다.

 

노련한 플레이보이 플래너건(게리 구퍼)의 구애에 태연한 척하면서도 그가 가슴에 꽂아 준 카네이션을 냉장고에 넣어 언제까지나 보관하는 아리안느(오드리 햅번)는 이미 그립고 간절한 사랑에 마음이 동했다.

 

영화는 흑백이지만 그 카네이션은 분홍색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당신을 열애합니다'라는 꽃말 때문이다.

 

봄은 곧 희망. 폭설과 지하철 사고로 마무리된 기나긴 겨울이 가고 어느덧 봄기운에 사로잡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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