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 남원시립국악단의 '맹진사댁 경사' 공연무대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배우가 있었다.
다소 과장된듯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연기에 창부터 민요까지 시원하게 뽑아내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삼돌이'. 맹진사댁 몸종으로 '이쁜이'를 짝사랑하지만 결국은 마음을 돌려야 하는 '삼돌이'는 좌충우돌 무대위를 휘젓고 다니면서 폭소와 찡한 감동을 전했다. '삼돌이'역으로 국악계의 신예로 떠오른 젊은 소리꾼 조성은씨(30). 남장배우로 관객들을 만난 그는 지금 국악계가 주목하는 신예다.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려앉는 지난 29일 이른 아침 남원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그의 얼굴이 환했다.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은 과분해요. 나만 튀어서 배우들간의 조화와 극전개를 깨뜨렸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소리길에 들어선지 10여년.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었던 '삼돌이'의 이미지 대신 소리와 창극 배우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진 그로부터 명창에 대한 절실한 꿈을 읽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광주에서 소리를 배우고 활동했지만 '소리'에 대한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광주도 예향이라 불릴만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높지만 내 꿈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주시립국극단에서 창극배우로 활동하며 창극 '쑥대머리'에서 임방울 명창의 어린 시절을 연기해 주목받았던 그가 돌연 남원행을 결심한 것은 지난해 2월. 무대활동을 많이 하고 싶다는 욕심과 소리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의욕이 결심을 부추겼다.
직장을 옮기면서 잠시 휴식기를 갖고 싶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시립국악단에서 소리가 좋고 연기력이 탄탄한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연한 창작창극 '만복사저포기'의 여주인공 '월희'역부터 시작해야 했던 그는 입단계약을 하기 전에 연습부터 시작해야 했고, 광한루에서 여는 남원시립국악단의 상설무대에도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삼돌이 역까지 포함하면 대작을 벌써 두개나 했습니다. 저에게는 경험을 쌓으면서 큰 공부하고 있는 셈이어서 무대활동에 대한 목표가 실현되어가고 있는 중이지요.”
자신이 맡은 역할은 끝까지 해내는 욕심 만큼 강단이 센 그는 책임감 강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맹진사댁 경사' 전주 공연을 앞두고는 급성충수염(맹장)수술을 해야했지만 그는 후유증을 감내하며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날 때 가장 즐겁다”는 그에게는 소리 스승이 많다.
가수를 꿈꾸던 그가 소리꾼에의 길로 들어선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악 애호가였던 할머니의 권유로 윤진철 명창을 만나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웠고, 전남대 국악과 재학시절에는 전정민 송순섭 성창순 명창에게 흥보가와 수궁가, 적벽가를 사사했다. 최근에는 성우향 명창 문하에서 춘향가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한 스승을 사사하면서 진로를 열어가는 풍토로 보아서는 그의 공부길이 독특하다.
"전정민선생님만 빼놓고는 모두 보성소리를 갖고 계시지요. 저도 보성소리의 맥을 잇고 싶은데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 스승들로부터 소리를 받다보면 서로 느낌이 다른 소리의 특징을 섭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 과정을 "나만의 소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소리가 익고 완성되려면 여러 스승을 섭렵해서 내 목에 맞는 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2때 동아콩쿨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부산국악대제전 명창부 대상, 진주 개천예술제 명창부 대상, 진도 전국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 등 굵직한 상을 수상하면서 국악계의 주목을 일찌감치 받은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한단계씩 올라가 명창의 반열에 오르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만족보다는 관객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소리꾼이 그의 목표.
이달말로 예정되어 있는 '만복사저포기'공연 준비에 한창인 그는 주인공 '월희'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작가 최정주씨가 10여년 전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를 모티브로 발표한 '고려별곡'을 새롭게 각색한 것. 그는 이미 지난해 공연한 터여서 마음 부담이 크다지만 비운의 여인 '월희'로 다시 태어나는 그로부터 관객들은 조성은의 '끼'를 마음껏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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