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수상작은 올해 영화제가 지향한 '발견'과 '경계허물기'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 선정됐다.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 부문에 주어지는 '우석상'에는 9개국 13개 출품작중 이란 나세르 라파예(Nasser Refaie)감독의 '입학시험(Exam)'이 선정돼 1만달러의 상금을 부상으로 받았다.
이란 여성들의 도전과 이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탁월한 통찰력으로 바라본 작품으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을 허무는 시도가 돋보였다는 평이다.
또 심사위원들의 손을 가장 늦게 떠난 중국 맹징휘 감독의 '치킨 포에츠'는 급변하는 중국사회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잘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특별 언급상(special mention award)'을 받았다.
디지털 영화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선정, 5천달러의 상금을 부상으로 수여하는 '디지털모험상'은 독일의 마크 오티커(Marc Ottiker)감독의 '기묘한 동거(1/2 The Rent)'가 영예를 안았다.
디지털 수단의 가능성과 영화 내용의 조화가 훌륭한 작품으로 이전의 디지털 영화와는 달리 영화 속에 사용한 음악도 우수했다는 평.
'시네마 스케이프' 부문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관람한 작품에 주어지는 'JIFF 최고 인기상'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스파이더'에게 돌아갔다.
◇ 우석상 나세르 라파예 감독의 '입학시험'
우석상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 '입학시험'은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작품이다.
안정숙(한국·한겨레신문 기자) 도로시 베너(독일·영화감독 및 기자)알랭 잘라도(프랑스·낭트3대륙영화제 창설자) 등 심사위원 3명은 4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작품 완성도와 실험성 모두 뛰어나, 최고 작품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세르 라파예의 첫 장편영화인 '입학시험'은 이른 아침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대학 입학을 결정지을 시험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순간은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험장에서의 다양한 대화 장면을 따라가며 여성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도전, 그리고 이란 사회의 문제를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안정숙 심사위원은 "이란의 변화와 현실에 밀착된 고민을 새로운 영화 형식으로 담아내는 참신함이 돋보인 영화”라고 평가했다.
라파에 감독은 1백여명의 출연진을 전문 여배우가 아닌 보통사람들로 캐스팅, 필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와 함께 탁월한 연출력으로 시험장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여성들만의 작은 세상을 창조해냈다.
나세르 라파예 감독(39)은 이란 영화계의 새얼굴. 극작과 연출, 촬영과정을 거친 뒤 조감독으로 영화활동을 시작했다. 전통과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이란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작업을 지속하며 국제영화제에서 두차례 수상하는 등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제작한 '입학시험'은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20회 파지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02 낭트 3대륙 영화제 은상과 특별언급상을 수상하며 국제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라파예 감독은 당초 전주를 찾아 이란영화의 흐름과 작품세계로 영화팬들을 인도할 예정이었지만 비자 관계로 입국이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라크 전쟁 때문에 비자발급이 늦어진데다 이란에서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들러야 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경유 비자를 제때 발급하지 못해 전주행이 무산됐다.
◇ 디지털 모험상, 독일 마크 오티커 감독의 '기묘한 동거'
모두 12편의 작품이 경쟁을 벌인 '디지털 스펙트럼'부문의 디지털 모험상은 독일 마크 오티커(Marc Ottiker·36)감독의 2002년작 '기묘한 동거'에게 돌아갔다.
아네트 쉰들러와 고바야시 마사히로·허진호씨등 심사위원 3명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다.
디지털매체의 가능성과 영화내용이 일관성있게 결합, 영화를 돋보이게 했으며 세밀하고 생생한 상황묘사와 등장인물의 감정적 깊이도 잘 드러났다는 평이다.
관객들을 설득력있게 끌어들인 이야기 구조와 영화음악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의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은 "다른 작품과 달리 감독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수작”라고 극찬했다.
올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던 '기묘한 동거(1/2 the Rent)'는 제작자 빔 벤더스가 젊은 감독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 시작한 '래디컬 프로젝트'의 첫번째 결과물. 컴퓨터 해커인 주인공이 어느날 여자친구의 자살을 목격한 후 도망자 신세로 전락, 아파트 빈방에 숨어들면서 그방의 주인들과 인간적 교분을 쌓아간다는 설정이다.
수상작과 함께 논의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소피!'와 '켄 파크'를 들었다.
디지털의 기술적·미학적 응용을 평가받아 '디지털 모험상'주인공이 된 마크 오티커 감독(Marc Ottiker. 36.스위스).
"아시아 지역에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상까지 받게 돼서 감격스럽다”는 그는 "이번 수상이 앞으로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묘한 동거'는 쫓겨다니는 신세가 된 한 컴퓨터 해커가 은신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인간적인 교분을 쌓는 과정을 잔잔하게 담은 영화.
감독이 조직한 밴드가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엔딩크레딧을 감독 자신이 직접 불러 사운드부분에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디지털은 다양한 영상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영화가 등장한 뒤에도 오페라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디지털은 기존영화와 경계 짓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공존하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디지털 역할을 새롭게 조명, 등장 인물들의 감정적 깊이를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정작 감독 자신은 '주관적 입장일 수 밖에 없다'며 자평을 피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젋지만 조직력이 뛰어나고 영화 선정도 훌륭했다. 20년 후에도 전주를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은 것이 지프에 대한 그의 짧은 인상이다.
◇ JIFF최고인기상 '스파이더'
'스파이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61·캐나다)의 작품. 시네마스케이프 섹션을 선택한 지프지기중 2천1백여 명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폭력과 부정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로 정신분열증을 겪으며 고통받는 주인공의 음울한 기억과 몽환적인 현실을 기록한 영화. 난해한 작품이지만 영화제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줄곧 O.S.T(피아노 선율)와 랄프 파인즈의 강렬한 인상이 담긴 연기력,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일품이라는 평이 올려졌다. 지난해 깐느영화제 공식경쟁작품이었고 토론토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조직위는 이외에도 전회 매진을 기록한 디지털 애니메이션 스페셜의 '애니매트릭스', 아시아독립영화포럼의 '미안해',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서 최고의 좌석점유율을 보인 '살로메' 등도 언급할 만하다고 밝혔다.
/김종표·임용묵·안태성·최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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