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난다 어머니 풋보리 잡아다가 가마솥에 삶던 날 지난 해도 그 지난 해에도 가슴 열어 반기던 멍석 마당이 뜨겁게 뜨겁게 볼 비비며 울었다. 나는 그 울음 빛이 어찌나 좋던지 허리띠 한 바람이 끊어지는 줄도 모르고 철없이 철없이 하늘만 보고 웃었다'-풋보리 전문'
김남곤시인(66, 전북예총회장)이 세번째 시집 '새벽길 떠날 때'와 수상집 '비단도 바수면 걸레가 된다'(신아출판사)를 앞뒤로 펴냈다. 오랜 문단활동에도 시집 펴내는일에 마음 앞세우지 않고, 기자로 논설위원으로 몸담았던 신문사 생활을 마무리하면서도 칼럼집 한권 내기 위해 잰걸음 바꾸지 않았던 그의 이례적인 의욕이 눈길을 끈다.
시집은 '헛짚어 살다가' '푸새 한마당' 에 이은 3년여만의 노작이다. 작정하고 시를 쓰는 일없는 시인은 '마음 가는대로 노트장에, 메모지에 연필로 남겨두었던 시의 파편들을 갖다 앉혔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단아하다. 시로부터 남겨진 여운 또한 맑다. 시인은 맑은 여운이 '마른땅 이슬비 노릇이라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은 자신을 한껏 낮추고 추스려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 시 편편마다에 드러난 시인의 회한과 반성은 철저하고 깊다.
'천수답 팔아 떨어진 몇 푼으로 어머니에게 미역국도 끓여주시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시인은 '마른 가슴에 테'를 매는가 하면, 면접시험을 보러가서도 '바람통에 살점을 내맡기듯 울고 있는 뉘집 양념통 같은 누이'를 떠올린다.
'넘어가야 산다는 이치'를 알고부터 '물이 되어 물을 뒤집어 쓰고 싶었지만' 시인은 결국 '물보다도 물의 통로가 되어 길게 엎디어 주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76편. 겸손함과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허소라 시인의 평처럼 그는 이 시대의 거창한 짐을 앞장서 짊어지겠다거나 쩌렁쩌렁한 관념어로 세상을 호령하지 않는다. 자신을 먼저 추스리고 이 강산 복통을 쓸어줄 대타 노릇인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겸양의 세계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시집과 함께 펴낸 수상집에서도 이러한 세계관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것들부터 최근의 칼럼까지를 꼼꼼히 챙겨낸 이 수상집은 그의 삶의 도덕적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여전히 몸낮춘 시인의 칼럼은 부드럽지만, 그 필력이 향해있는 지점은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칼럼들은 세상을 향한 지극한 애정이고, 진지한 조언이다. 그의 글로부터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유지승강(柔之勝剛)'의 의미를 생각하게 됨은 새삼 스럽지 않다.
올해 초 그는 아무도 모르게 병원을 오가며 생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문턱에까지 이르렀던 적이 있다. 결국은 작은 병치레로 정리된 일이었지만 그 사건은 시인으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보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이 조급하여 당시로서는 지금이 아니면 정리하는 일도 어려울 것 같았다”는 두권의 책을 앞에 둔 시인은 시집의 머리글에 이렇게 썼다.
"부끄러움을 타기는 예나 시방이나 다를 게 없다. 세번째 시집을 내면서도 역시 고개를 들 수 없는 건 매 한가지다.”
그의 시와 산문들이 우리에게 영락없이 '마른 땅에 이슬비'같은 것이라면 그의 부끄러움은 깊어질 수록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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