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축제의 신명도 음악의 감동도 쉽게 찾아올 수 있다. 멍한 상태로 연주장을 찾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으로, 맘먹고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그만큼 큰 기대를 하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신명의 한판 축제를 위해서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마음가짐과 그에 상응할 정도의 철저한 연출기획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30일 저녁,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연주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신명과 감동의 깊이를 더해준, 한판 멋들어진 축제의 전형이었다.
개막공연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야외공연장을 찾았다. 가을의 유혹을 떨칠 수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소리축제에 대한 미련이 발걸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영역을 풍성하게 넓혀가고 있는 박범훈에 대한 기대와 어느덧 10년의 경력을 쌓아온 오케스트라 아시아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관객들의 믿음과 기대는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오케스트라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호응을 해주었다.
우선 탁월한 기획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축제의 성격에 걸맞게 소리를 중심으로 연주곡을 편성한 것이나, 지역성을 감안하여 연주곡과 연주자들을 선정한 것 모두 반가운 일이었다. 또 하나, 개막공연과 대비가 되는 점이기도 한데, 연주곡 모두를 야외공연에 적합한 것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야외공연 특유의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청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곡의 배치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신들린 사물놀이의 '신모듬' 연주로 대미를 장식하게 한 것이나, 그 중간에 세 나라 전통 악기와 음악의 특색을 느낄 수 있게 배치한 것, 모두 청중들의 마음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한 연출로 보여졌다.
지휘자의 '계산된 끼어들기'도 '준비된' 청중들에 대한 '준비된' 배려였다. 청중들의 환호에 자연스럽게 호응하듯 무대에 올라와 이를 더욱 고조시킨 것이나, 합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이름조차 몰랐던 중국과 일본 악기들을 소개하고 그 고유한 음색을 맛볼 수 있게 해준 것은 '준비된' 청중들도 예기치 못했던 값진 선물이었다.
두 지휘자가 함께 나와 주고받은 마지막 앵콜연주도 철저하게 '준비된' 연출의 결과일 것이다.
오케스트라 아시아가 전한 감동의 파장이 길다.
이래저래 또 다시 말도 많은 소리축제의 마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숙명과도 같은 미늘에 꿰이고 만 것이다.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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