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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축제 특별기고] '황병기와 나효신의 만남'에 대해

 

10월 1일과 2일 밤 '황병기와 나효신의 만남-비단길 그리고 아크마토바의 뮤즈'가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한마디로 일반적인 음악의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다. 연주 기법, 화성체제, 음악의 전개 방식, 조율법, 악기에서 소리를 내는 곳의 선택 등 여러 가지 점에서 그렇다.

 

현대음악이란 새로운 음악이다. 어느 시대이건 새로운 음악은 있었으며 대개는 충격적이었고 또한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비판의 가장 큰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미 익숙한 전개를 버리고 청중의 예상을 깨는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은 당혹해 하고 난해하다며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아끼고 찬탄하는 많은 음악들도 실상 그것이 발표되었던 당대에는 오늘날의 현대음악과 마찬가지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베토벤 음악도 거칠고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쓴다는 비판을 받았고, 드뷔시 음악은 좌익의 선전도구라는 평을 받았으며,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바르톡 역시 평생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20세기는 수많은 발명과 매체의 발달로 미에 대한 인간의 감각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음악은 아름다움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획일적이며 표준적인 심미관이 깨어지고 다양한 음악들이 공존하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어쩌면 충격이 큰 음악일수록 결국은 그 영향력이 보다 큰 음악으로 자리잡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에는 음악에서도 더욱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따라서, 현대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열린 마음으로 이들 음악을 받아들이고 공연을 기회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황병기와 나효신의 작품들이 국내에서는 그런 평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날 관객들이 보인 진지하고 성숙한 관람태도는 미래의 우리 지역 음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대단히 지적이며 철학적인 나효신의 곡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성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관조(觀照)의 즐거움'을 얻지 않고는 온전하게 감상하기 어려운 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의 연주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난해한 음악과 춤의 만남을 열과 성을 다해 훌륭하게 소화해낸 우리 지역의 이경호(전북대 무용학과 교수), 신용숙(현대무용단 사포 대표)의 춤, 그리고 가야금 중주곡을 훌륭하게 연주해 낸 도립국악원 교수와 단원들의 노력도 또 하나의 희망적인 만남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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