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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청화큰스님을 추억하며

 

나뭇잎도 다 져버린 지난 11월 12일, 전남 곡성 성륜사 조실로 계신 청화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육신이라는 사바세계의 마지막 옷을 벗어버리고 열반적정의 세계로 드신 것이다.

 

스님의 열반소식을 들은 사부대중의 안타까운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스님은 삼독의 불길이 꺼진, 절대 극락의 경지에 드신 것이건만 남아있는 우리들의 마음은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자녀처럼 슬프기만 하다. 불가에서는 생사의 오고감을 인연법으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스님의 부재는 곧 스승의 부재이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은 더하다.

 

다행히도 나는 생전의 청화큰스님을 직접 뵐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제작년에 본교에서 청화큰스님을 모시고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스님께서는 건강이 별로 좋지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오셔서 계를 설하시고 법명을 내려주었다. 하루에 한끼만 드시는 스님은 바람만 불면 휘어질 듯 가냘펴보이셨으나 그 눈빛만은 형형하였고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아 듣는 우리로 하여금 보살의 세계로 자연스럽고 편하게 끌어주었다. 법문을 설하고 가실 때 많은 학인들과 신도들이 배웅하기 위해 스님을 둘러싸고 합장배례하였을 때도 스님은 신도들을 향해 일일이 합장배례하며 미소를 보이셨다. 그때 나는 비록 먼발치에서 스님을 뵈었을뿐이나 스님에게서 은은히 풍겨나오던 따스한 자비의 기운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신도들의 인사에 일일이 인사하던 스님의 겸손한 모습. 나는 그것이 바로 오랜 수행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청화큰스님의 열반소식을 듣고 그때 스님께 받았던 보살십계를 떠올려봤다.

 

첫째, 생명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둘째, 도둑질 하지 말라. 셋째, 음탕한 행위를 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 하지 말라. 다섯째, 술마시지 말라. 여섯째,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일곱째,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말며 다른 사람을 시켜서도 하지 말라. 여덟째, 자기것을 아끼려고 남을 이용하지 말라. 아홉째, 성내지 말며 남으로 하여금 성을 내게 하지도 말라. 열번째,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이것이 보살이 지켜야 할 십중대계이다. 이 외에도 사십팔(48)가지 계율이 있어 불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소소한 것까지 일러두었다.

 

'옴 살바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진언을 외우며 연비를 받고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지었던 모든 업장을 참회하며 앞으로 참되고 진실한 보살행을 하며 살겠다는 원을 세웠다. 스님이 보살의 열가지 계율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며 '지키겠느냐 말겠느냐' 하셨을 때 우리 수계자들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큰소리로 답하고 계를 받았다.

 

법문을 설하시던 스님의 모습은 그 자체가 바로 법문이셨다. 말하지 않으면서도 온몸으로 장광설의 법문을 설파하고 계신 스님을 보고만 있어도 환희심이 절로 일어났다. 나는 이 생에서 스님께 보살계를 받게 된 것을 크나큰 복덕이라고 생각하고 계를 잘 지키리라 다짐을 했다. 다시금 그때를 되돌아보니 계를 받기만 했지 지키는 것에 너무 게으르고 안일했다.

 

스님의 열반소식을 접하던 날, 오후에 외출을 하니 거리엔 색바랜 낙엽들이 발길을 따라 뒹굴고 있었다. 이제, 만추도 지나 어느덧 초겨울에 접어들고 있다. 사람의 인생도 저 나뭇잎과 같아 때가 되면 흙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스님의 열반소식을 들어서 그런지 떨어진 나뭇잎들이 더 새삼스럽게 쓸쓸하고 무상하게 보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모두 한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그 생명이 스러지는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인 것 같다. 올 가을, 유난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의 화두가 스님의 열반소식으로 더욱 분명해지는 느낌이다. 스님께서 일러주신 보살의 삶을 살리라. 보살의 십계를 내 일생의 지표로 삼고 오늘도 내일도 이 발심을 놓지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리.

 

큰스님은 열반에 가시는 순간까지 이렇게 미혹한 나를 일깨워주고 가신다.

 

/안소민(전북불교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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