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도 없는 주부학교의 작은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 시간 동안을 그렇게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년 전에 중학교 과정을 졸업한 사십대 중반의 S라는 학생이 오늘 점심을 대접하려고 왔다고 했다. 고등학교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하자 교실 바닥에서 큰절 올렸던 바로 그 학생이었다.
S는 시 외곽의 성덕이라는 마을에서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출석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시험만 보면 성적이 좋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은 옆 사람을 힐끔 거리며 커닝도 하는데 S는 그런 행위는 생각도 안할 만큼 올곧은 성격이었다. 그러기를 수 년하고서 결국은 영어를 비롯한 전과목에 걸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것이다. 지금은 시내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으며 학비는 파출부를 하면서 번다고 했다. 농사 짓는 남편과 병든 시아버지 수발가지 하면서도 학구열은 불타올랐고 앞으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할 포부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합실에서는 기차나 버스를, 찻집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회사원은 퇴근하고 한 잔 할 시간을, 병사는 제대할 날을, 학생을 졸업을, 겨울이 되면 새봄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대부분의 기다림은 간절함을 수반한다. 우리세대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간절한 기다림의 하나는 아무래도 남북한 이산 가족들의 반세기가 넘는 기다림일 것이다. 기원 전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굴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찾아가는 광야에서의 사십년 간의 기다림도 있었다.
'달하, 높이 곰 돋아샤 머리 곰 비취 오시라'하며 행상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정읍사'는 전해 내려오는 백제가요 중 가장 오래되고 애절한 기다림이라 할 수 있겠다. 서양에도 피그말리온 왕이 자기가 만든 상아 조각상 갈라테아를 자기의 신부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다리자 그 간절함에 감동한 아프로디테 신이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그리스 신화의 간절한 기다림도 있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라는 옛 시조가 있다. '청산'은 우리가 찾는 이상향이라고 하는 해석도 있다. 언덕너머에 있다는 그 유토피아를 간절하게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S는 옛 가르침을 잊지않았고 먼 길을 달려왔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라는 '청산'을 향하여 한발한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녀의 소박한 소망이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 질 날을 나 또한 간절히 기원하며 기다릴 것이다.
/진원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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