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만에 서예가로서의 본격적인 외출이니 마음 설레일 수 밖에 없다.
중문학자이자 서예평론가인 김병기교수(50·전북대)가 평론이 아닌 서예작품으로 대중들을 만난다.
14일부터 21일까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갖는 전시회다. 단체전이나 기획전에는 간간이 참여해왔지만 개인전으로는 처음이다. 날카로운 비평과 확실한 자기 철학으로 서단을 마름질해온 그답게 이번 개인전에도 ‘심석 김병기교수의 주장이 있는 서예전’이란 이름을 내세웠다.
김교수가 전하는 화두는 요즈음 너나 없이 나서는 웰빙의 정체. 김교수는 개인전 도록을 겸해 함께 펴낸 책 ‘사람과 서예’(월간 서예문인화 펴냄)를 통해 ‘서예가 웰빙이다’는 독특한 논리를 설파한다.
“웰빙의 본래 의미는 행복을 외부에서 구하지 말고 내 몸, 즉 내 자신 안에서 구하자는 것이랄 수 있습니다. 나의 몸안에서 행복을 찾자는 생각은 ‘자기닦기’, 곧 ‘수신(修身)’을 이르지요. 서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분야보다도 수신적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점에서 서예야말로 곧 웰빙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분야입니다.”
2003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국제학술대회에서 ‘서예는 곧 사람이다’란 기조 발제를 통해 서예가 심신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주목을 모았던 김교수는 연구작업을 더 진전시켜 건강과 치료, 명상 등 여러방면에서 탐색한 서예의 웰빙적 요소를 이 책에 담아냈다.
‘서예는 건강이고 치료이며, 곧 사람이고 명상이다. 또한 송축이고 기원이다’는 주장은 그 특유의 명징한 학문적 해석과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도도하게 전개된다.
“지난 20세기에 동양이 서양에 비해 후진이라는 멍에를 매게 된 까닭은 서양이 가지고 있는 과학과 기계와 자본의 우월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과학과 기계와 자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지요. 20세기의 기계적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 흐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w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서양적 삶과 동양적 삶, 과학앞에서 죽은 신 등으로 이어지는 김교수의 삶에 대한 통찰은 ‘자기 몸을 닦는 수신이 왜 필요하고 가치있는 일인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날카로운 서예관과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해 견고한 서단의 벽을 공략(?)해왔던 그를 이제 ‘수신의 통로로 삼아왔던’ 서예작품으로 만나는 일은 더 흥미롭다.
일곱살때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줄곧 일상에서도 붓을 놓지 않으려 애썼던 그가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최근 6년동안 쓴 작품들. 6미터가 넘는 대작부터 세필로 쓴 소품까지, 형식도 내용도 다양하다. 서단의 관행으로는 세필작품을 본격적인 전시회에서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전주전에 앞서 열었던 서울전(2일부터 8일까지 백악미술관)에서도 그의 세필작품들은 특별한 주목을 모았다.
“지금 남아 있는 서예 유적들을보면 큰 작품들보다 간찰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 작은 간츨 글씨를 보면 작은 글씨라고 소홀히 쓴 것이 아니라 큰 글씨의 필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지요.”
작은 글씨를 면밀하게 보다보면 큰 글씨의 필법까지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번 전시작품들의 주류는 행·초·예서. 특히 작은 글씨로 써낸 '중용'은 오랫동안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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