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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새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 -시 ‘간격’ 전문’

 

안도현시인(43)의 새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펴냄)가 나왔다. 여덟번째 시집이다. 3년만에 만나는 그의 시들은 풍요롭다. 일상성으로부터 잘게 부서져 나오거나 더욱 깊게 침잠해 있는 그의 언어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향한 아득한, 혹은 아늑한 그리움을 안고 달려온다. 시가 놓여있는 지점, 시가 아닌 글쓰기(?)에 오래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하며 시인의 심상에 목말라했던 독자들에게 시인은 보기좋게 화답한다.

 

이 시집에 발표한 시는 60편. 모든 시편들이 줄곧 시도해온 세상과의 ‘화해’위에서 태어나 생명을 얻었다. 세상의 어느것도 갈등의 국면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없을진대, 시인은 그 갈등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화해의 틈새를 찾아’내고, ‘화해의 소식을 전해’준다.

 

시인이 세상과 화해하는 풍경은 눈물겹다. 그 눈물겨운 노력을 황동규는 “세계와 자신을 가능한 한 밀착시키려는 의지”라고 해석한다.

 

시인의 의지는 철저하게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나 또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언어의 힘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고자하는’ 시인의 오래된 미덕이다.

 

'나는 맨발이었고, 마루를 밟는 발바닥이 따뜻했다 아버지가 군불때고 들어와 내 어린 발을 잡아주시던 그 옛날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득해져서, 나 혼자밖에 아낄 줄 모르는 나도 툇마루가 될수 있나, 생각했다'('툇마루가 되는 일')

 

일상의 도처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의지는 때로 대상을 여유롭게 관망하는 듯 하면서도 철저하게 밀착하는, 그리하여 자기성찰의 의지로 진전시켜내는 탐색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숯불위에 올린 석쇠위의 곰장어를 보고 '일생(一生)이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그 길이 몇뼘 늘리는 일이었구나'('곰장어 굽는 저녁')를 깨닫는 일이나 ‘쥐똥을 쓸어내고 어지러운 발자국을 걸레로 닦다가/방 구석구석 기둥이며 벽에 새겨진 쥐 이빨 자국’을 보며 ‘그놈은 출구를 찾고 있었던 것’(‘혈서’)을 알게되는 일은 시인에게 단순한 일상이 아닌 것이다.

 

적지 않은, 그러나 길지 않은 시편들을 읽다보면 시인이 끝내 지키려하는 시적 세계는 어디쯤에 존재할까가 궁금해지지만 시인은 '나'와 ''나 아닌 것'과의 사이에 놓인 '거리'와 '관계'에 대한 탐색을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언제쯤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시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시에 갇힌 나무와 꽃과 새를 풀어줄 수 있을까. 언제쯤이나 나를 정면에서 배반할 수 있을까.”

 

시인은 시집의 과적 중량이 ‘버겁다’고 말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아름다움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눈뜸이 아닐 수 없다.

 

오롯이 글을 쓰는일로만 복무했던 시인은 지난 9월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었다.

 

'너에게 가려고/나는 강을 만들었다 -중략-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강’)

 

시인에게 시를 쓰고 또한 가르치는 일이 혹, 강을 만드는 일과 같은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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