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박물관에 근무할 때, 구입한 고문서 뭉치를 정리하다 조그만 수기 하나를 발견하고서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조선시대의 ‘이혼합의서’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때 마치 신문기자가 특종을 하나 건진 것처럼 탄성을 지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우선 그 수기를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기 애통하구나. 가슴이 미어진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 중) 세 번째로 큰 윤리[大倫]인데 무상(無常)하구나. 아내는 (그동안 나와) 함께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동고동락하여 왔는데[同?糟糠] 뜻하지 않게 오늘 아침에 나를 배반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렸으니 슬프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저 두 딸은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여 자랄 것인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말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배신하였으니 어찌 내가 그녀를 생각하겠는가? 칼을 품고 가서 그녀를 죽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장차 앞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분 생각하여 용서하고 엽전 35냥을 받고서 영원히 우리의 혼인 관계를 파기하고 위 댁(宅)으로 보낸다. 만일 뒷날 말썽이 일어나거든 이 수기를 가지고 증빙할 일이다.’ -을유년(乙酉年) 12월 20일 최덕현 수표-
위 수기는 여러 가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데 그 중 하나가 위 수기의 작성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 이 수기의 작성자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최덕현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만일 이 수기의 작성자가 최덕현이라면 수기의 본문을 모두 한문으로 작성한 후 자신의 이름만을 굳이 한글로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수기의 실제 작성자는 누구일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최덕현의 아내이다. 그러나 최덕현이 겨우 한글로 자신의 이름 밖에 쓸 수 없는 처지인데 그의 아내가 유식하게 한문을 터득하여 수기를 작성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그 다음으로는 최덕현의 아내를 데려간 사람이거나 그의 측근일 가능성이 있다. 최덕현의 아내를 데려간 후 남의 처를 빼앗아 갔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뒷날 말썽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서둘러 없앨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최덕현에게 35냥을 주고서 대신 수기를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덕현으로부터 후일 뒷말을 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다짐을 받아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최덕현은 한글로 겨우 자신의 이름 정도 쓸 줄 모르고 또 이전에 문서를 작성해 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최덕현의 아내를 데려간 사람이나 그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 수기를 작성한 후 이를 최덕현에게 주어 서명하고 수장을 그려 넣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수기의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면 그러할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 수기에는 부부로서의 도리, 빈한(貧寒)한 가운데에서도 동고동락했던 기억, 배신한 처에 대한 원망 등이 절절히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최덕현의 아내를 데려간 측에서 이 수기를 작성하였다면 이런 표현들을 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굳이 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수기에 나타난 표현들을 근거로 판단한다면 이 수기를 작성한 사람은 최덕현의 아내를 데려간 측보다는 오히려 최덕현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측근 중의 한 사람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전경목(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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