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사회에서 노예는 인격이 부인된 존재였고 귀족이나 양인들의 재산으로 여겨졌음은 동서양의 구분이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선시대 노비도 인간이었지만 사람으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노비는 토지나 가옥처럼 재산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주인의 뜻에 따라 팔거나 상속해 물려주기도 하고, 선물도 할 수도 있었으며 서로 맞바꾸거나 빌려줄 수도 있었다. 심지어 계집종을 팔면서 뱃속의 태아까지 값을 쳐서 받았고 그 가격은 말 1필 값보다 쌌다고 하니 노비는 말하는 가축이나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조선시대 고문서인 분재기나 호구단자, 매매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노비의 이름을 보노라면 노비의 주인들이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었는지가 여실히 나타난다.
대개 노비의 이름은 양반이나 양인의 이름에는 쓰지 않는 글자를 사용하였는데, 강아지(姜阿只), 도야지(都也之), 두꺼비(斗去非, 蟾伊), 솔개(召叱介), 복지(卜只), 송아지(松牙之), 망아지(亡阿只) 등은 주로 사내종의 이름으로 보이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동물을 지칭한다. 또한 식물을 나타내는 설중매(雪中梅), 솔잎(?立), 국향(菊香), 연화(蓮花)등의 이름은 계집종에게 붙여진 이름으로 비교적 좋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년(者斤年伊), 쪼깐이(足間伊), 작은놈(者斤老味), 꺽쇠(?金), 어린이(於理尼), 돌쇠(乭金), 쇠돌무치(金乭無治), 마당쇠(?堂金) 등의 외모나 직분에 따라 붙인 이름도 있지만 개똥(介同, 犬屎), 분녀(糞女), 방귀(方貴), 똥싼(屎山), 말똥(馬叱同), 물똥(無乙同) 같은 더러움을 나타내는 이름도 있다.
이외 성격이나 행동에 따라 기특(奇特), 맹랑(孟浪), 인색하다는 뜻의 노랑(老郞), 망나니(亡難, 莫亂), 모진놈(毛之里) 등이 있고 생일이나 계절과 관련하여 正月, 丁未, 秋月, 뒤늦게 오십에서야 난 쉰동(五十同) 그리고 얼굴의 미추를 표현한 얼금이(?今伊), 곱단이(古邑丹伊), 예분이(禮分伊) 같은 이름도 있다.
그 밖에 소수지만 오상(五常)이나 소례(小禮)같은 유교적 덕목을 나타내는 고상한 이름도 있지만 반대로 지독히 나쁘다는 뜻의 견악(堅惡)이나 악독한 귀신이라는 뜻의 야차(夜叉) ,썩을년(石乙年), 말종(唜宗), 시체(尸?) 등 듣기에도 민망한 이름도 보인다.
때로는 노비도 개명을 하기도 하였는데 상속이나 매득으로 인해 기존의 노비이름과 중복이 될 경우에 한하였지 양반의 경우처럼 사주팔자나 행렬자를 맞추기 위한다거나, 기피인물의 이름과 유사할 때 개명하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은 물론 인격과는 더 더욱 무관하였다.
이상과 같은 이름들을 보면 노비 이름 짓는 일은 마치 지금 우리가 애완동물에게 이름 붙이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더구나 17세기 전반에 전체호구의 3분의 1이상이 노비호였다는 통계를 감안한다면 단순한 계산으로도 지금 우리 중 3명 가운데 1명은 노비의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300년전 나의 할아버지가 앞에서 언급한 이름을 가진 노비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정성미(원광대 강사, 전북대박물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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