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서 땔감 구해 직접 빚은 흙인형 굽고
전주 우석중학교 1학년 7반 아이들은 방학이 시작되기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지리산 가까운 남원의 시골마을에서 한반 친구들이 2박3일동안 미술을 통해 농촌을 체험하는 일이었다.
‘2004 매동마을 겨울 미술캠프’. 남원시 산내면 매동리의 한마을에서 진행되는 이 캠프는 전주의 공공작업소 심심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여름방학때 처음으로 시작된 이 캠프는 농촌마을 가꾸기를 위한 심심의 ‘빈집에서 놀기’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 ‘전북의제21’과 ‘심심’이 공동으로 진행, 한여름 15일동안의 일정으로 치러졌던 여름캠프는 젊은 작가들의 열정적인 참여로 첫시도라는 의미를 뛰어넘는 성과와 가능성을 얻었다.
“급격한 도시화속에서 황폐해져가는 농촌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했다”는 심심의 김병수소장은 “빈집이 늘어나는 농촌마을의 공간적 가치를 발견해 문화적 공간을 마련하고 마을주민의 공동체적 정신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름캠프에서 얻었다”고 소개했다.
심심이 기획한 두번째 프로그램을 주목한 사람은 우석중학교 교사 임영수씨다. 아이들이 자연의 소중함에 눈뜨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교육적 방식에 관심이 높은 임씨는 담임을 맡고 있는 같은 반 아이들의 겨울 캠프를 망설이지 않고 추진했다.
“도심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골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 우리 아이들에게 썩 좋은 추억도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에서 운영하는 체험학습이나 특별활동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만 시골마을을 찾아가 체험하는 기획은 처음. 낯선 프로그램에 아이들은 호감을 보였지만 캠프 추진에는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가고 싶은데 부모님 허락을 얻지 못한 경우는 임교사가 나서 부모들을 설득했다. 참가비의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반아이 서른 여덟명 중 스물일곱명이 캠프 참가를 신청했다.
‘매동마을 미술캠프’는 아이들에게는 낯선 체험이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만드는 체험교육이나 공동체적 작업만이 중심이 아니다. 미술캠프의 주요프로그램은 흙인형을 만들어 마을의 빈집 공간에 설치하는 문화적 체험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획진은 캠프의 목적은 결과물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미술교육이기 보다는 놀이의 장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체험했으면 좋겠어요. 마을의 빈집에서 흙인형을 만들고 산과 들에서 나무를 구해 인형을 굽고, 마을의 폐목을 이용해 인형이 놓여질 자리를 만들면서 아이들은 매동마을의 산과 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될 겁니다.”
겨울미술캠프를 기획한 소영식씨(30, 공공작업소 심심)는 이런 프로그램이 활성화된다면 도시의 문화컨텐츠와 농촌마을의 공간이 새로운 교류의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2박 3일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마을의 이곳저곳 돌아다니기-흙인형 마을 만들기 설명 및 토론-빈집 마당 정리하기-흙인형만들기-가마 땔감 구하러다니기-흙인형 가마에 굽기 등 직접적인 체험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모든 과정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과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얻어낸 형식과 내용으로 진행된다.
마을을 둘러보고 실상사까지의 답사가 끝난뒤, 마을회관에 다시 모인 아이들에게 본격적인 과제가 주어졌다.
흙인형 만들기를 진행하는 소영권씨(30)는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흙인형은 어떤 것을 만들어도 좋아. 그러나 우리들이 왜 이 마을에 왔을까를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받은 느낌들이 담겨지면 더 좋겠지. 실상사까지 걸어갔다오면서 아마도 많은 생각들을 했을거야. 매동마을이 갖고 있는 특성에 대해 선생님들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매동마을에서의 첫날, 아이들은 아직 매동마을의 아름다운 아침도, 쓸쓸해서 더욱 고요해지는 밤의 풍경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2박 3일 낯선 매동마을에서의 체험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난 후에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
'빈집에서 놀기' 프로젝트는
매동마을은 남원시 산내면의 지리산 실상사 인근에 위치해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공공작업소 심심이 매동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전북의제 21’과 함께 ‘마을가꾸기’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그 첫번째 사업이 지난해 여름 진행했던 ‘빈집에서 놀기’ 프로젝트다.
‘마을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마을은 고향이어야하고, 우리의 잃어버린 공동체적인 삶의 공유체여야 한다. 우리 삶의 근원과 뿌리로서 다가서야 하는 곳, 마을은 그러한 공간으로서 가꾸어지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심심’이 내세운 마을가꾸기 사업의 배경이다.
매동마을은 그러한 마을가꾸기 실현의 첫번째 대상인 셈이다. 지난해 젊은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던 여름캠프는 마을에 새로운 공간을 남겼다. 좁은 골목길 위에는 아기고래가, 시멘트 담장에는 색색이 벽화가 담겼다. 주인 없이 허물어져가는 빈집에도 열매 풍성한 나무가 담긴 벽화가 들어서고, 어느 방안에는 흙인형이 남아 있다. 모두가 여름캠프의 흔적들이다.
녹색농촌체험마을 추진위 위원장을 맡아 마을가꾸기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이영호위원장(50)은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위해 이러한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들이 남아있지 않은 농촌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교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농촌마을은 도시사람들에게 휴식과 휴양의 정서적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는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도 도농교류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아이들을 맞아 매동마을이 활기를 얻었다”는 이위원장은 시작단계에 있는 매동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90여가구, 2백50여명이 살고 있는 매동마을은 천석꾼 규모의 부농들이 살았던 마을답게 위세있는 기와집들이 적지 않지만 지금은 피폐해진 농촌마을의 고민을 예외없이 안고 있다.
지난해 농림부가 주관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을 신청,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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