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6:36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템포] 본교 되는 마암분교의 겨울

새학년 새교실 모든것 새로운 동심의 나라에 아이들 웃음꽃

흰눈이 쌓인 교정에서 미끄럼을 타는 마암분교 학생들. 함성을 지르는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안봉주기자 안봉주([email protected])

눈이 푸지게 내렸다. 운암저수지 건너편 작은 마을들은 눈에 갇힌 듯 엎드려 있다. 운암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발딱 올라 서있는 마암분교도 눈에 묻혔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다시 나온 아이들로 학교는 온기를 얻었지만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교실마다 기웃거리기를 여러번. 낮 12시 점심시간이어서 아이들이 식당에 모여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식판들고 오가는 식당은 번잡할 법한데도 작고 예쁜 아이들의 걸음도, 소리도 낮다. 키득거리며 장난치는 개구장이들도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신 아이들의 숟가락질은 빨라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교실로 가기 위한 조급함 때문이다.

 

개학한지 이틀째. 오늘은 새학년 새학기 교과서를 받는 날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돌아가면 아마도 새학년 교과서를 선생님이 나누어주실 것이다. 학년이 올라간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슴 설레는 일이다.

 

마암분교 아이들은 새학년에 올라가는 일 말고도 마음 설레는 일이 또 있다.

 

마암분교는 새학기부터 마암초등학교로 정식 학교의 체제를 갖추고 이름을 얻는다. 분교의 딱지를 떼고 본교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고 신나는 일이다.

 

“그냥 좋아요.”아이들은 앞다투어 소리를 지른다. “학교도 새로 짓잖아요. 얼마나 좋은데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2학년 봄이가 핀잔을 준다. 마암분교에 들어서면서 낯설었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 같다.

 

마암분교는 교사를 새로 지었다. 건물을 새로 짓느라 어수선했던 학교는 겨울방학 동안 공사를 마치고 2학년과 5학년 교실이 있던 건물의 앞쪽에 멋있는 신식 교사를 얻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첫날,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마암분교 아이중에는 이름 널리 알려진 아이들이 적지 않다. 김용택시인이 마암분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의 시를 엮거나 노래를 붙여 책으로 펴낸 덕분이다. 창우는 그 중에서도 시 잘쓰는 아이로 이름이 높다. 3학년때 '달팽이'라는 시를 써서 널리 감동시켰던 창우는 어느새 6학년이 됐다.

 

마암분교의 마지막 졸업생이 된 창우는 “이제 동생들이 분교가 아닌 마암초등학교란 이름으로 학교 다닐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특별히 불편한 일은 없었지만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번번이 본교인 운암초등학교까지 가서 치러야 하는 일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본교를 오가야 했던 그 기억이 창우에게 또한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겨우내 기다렸던 눈은 겨울 방학이 지나고서야 제대로 내렸다. 아이들은 임실교육청이 제공하는 작은 버스를 타고 오거나 더러는 걸어서 학교에 왔다. 전교생 29명 중 한명도 결석하지 않았다며 송병섭 선생님은 아이들을 기특해했다.

 

새 교과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흰눈 쌓인 운동장에서 눈싸움도 하고 미끄럼도 탔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가 형제들인 아이들에게는 더이상 즐거움이 따로 없다.

 

“하나둘 셋 하면 내려가기. 먼저 가기 없다.” 창우가 소리쳤다. 아이들의 색색깔 웃음소리가 높다. 수북이 쌓인 흰눈 위에 아이들의 웃음이 제 멋대로 자국을 남겼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