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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 농촌교육 희망의 불씨

임실 마암·김제 화율분교 도내 첫 본교 승격 이례적

올 3월 1일부터 본교로 승격된 임실 마암분교 재학생들이 학교에서 나눠준 새학기 교과서를 받아들고 눈이 내린 하굣길을 걸어가고 있다.../안봉주기자 안봉주([email protected])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해도 농촌의 학교는 여전히 쓸쓸하다.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들로 학교는 폐교의 위기에 처하기 일쑤이고, 몇 안되는 학교들은 학생수 확보하느라 부심하고 있는지 이미 오래다.

 

이런 환경에서 올해 전라북도에서는 2개 초등학교가 분교의 틀을 벗고 본교가 된다. 임실군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장’과 ‘김제 원평초등학교 화율분교장’이다. 폐교의 위기에 처해있던 학교가 다시 회생하는 국면은 농촌의 희망을 보여준다.

 

도교육청은 지난 7일 '전라북도립학교설치조례중 개정조례'를 공포했다. 이 개정 조례에 따라 오는 3월 1일부터 마암분교는 마암초등학교로, 화율분교는 화율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꾼다. 분교의 본교 승격은 도내에서 처음이기도 하지만 폐교 직전까지 갔던 학교들이 오히려 면모를 갖추어 살아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마암분교는 겨울 방학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새 교사도 완공했다. 지금까지 운암초등학교를 통해 이루어졌던 행정은 이제 모두 독립적인 영역이 됐다. 교사들의 업무는 물론이고, 교육예산도 예전과 같지 않다. 전교생 29명의 마암분교는 오는 3월 새 입학생을 받는 시점을 기준으로 37명-40명 규모의 학교가 된다. 올해 신입생이 그 어느해보다도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더부살이 했던 운암초등학교보다 학생수가 더 많아질 참이다.

 

분교의 본교 승격은 아이들의 교육여건 개선에 여러모로 도움이 커지지만 그만큼 실제로 안아야 하는 어려움 또한 적지 않다. 본교의 체제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첫번째 과제다. 교사가 늘어나지 않는 한 교육행정 업무가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지만 교사수가 확보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농어촌 교육 활성화만을 내세워 별다른 여건도 확보하지 않은채 분교를 본교로 승격시키는 것에 반대했었다. 폐교의 걱정은 덜었지만 대책 없이 본교로 승격시키는 일도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분교의 본교 승격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 여건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교육전문가들은 말한다. 분교를 본교로 만드는 일에는 우선 해결해야할 교육적 여건 확보가 적지 않지만 농촌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사회성을 길러주고 교육적 혜택을 고루 확산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폐교 직전까지 갔던 마암분교의 본교 승격. 농촌교육의 희망을 제시하는 이 분교의 의미있는 변신이 관심을 모은다.

 

마암분교 마지막 졸업생 창우·장군이

 

"마암 초등학교란 이름은 낯설지만 아무래도 본교가 되면 좋죠."

 

올해 마암분교를 졸업한 창우는 입학하기 전부터 학교에 놀러다녔다. 동생 혼자 남게되는 것이 걱정스러워 형이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남들이 6년 다니는 초등학교를 7-8년 다닌 창우는 또한 마암분교의 마지막 졸업생이 됐다.

 

"저까지만 운암초등학교에 가서 졸업식을 해요. 아마 내년부터는 마암에서 졸업식도 입학식도 하겠죠?"

 

다른 학교에 가서 졸업식을 한다는 것이 내내 마음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암분교의 올해 졸업생은 두명. 창우와 5학년때 익산에서 전학온 장군이다. 유난히 친했던 다희가 전주로 전학간 이후 창우는 장군이가 전학오는 덕분에 혼자 졸업하는 상황을 면할 수 있게 됐다. 창우와 장군이는 구이중학교에 함께 입학한다.

 

창우는 유명세가 높다. 마암분교에 재직했던 김용택시인이 아이들의 시를 모아 펴낸 동시집을 통해 창우의 시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덕분이다. 다희와의 아름답고 순수한 우정은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의 소재가 되어 '가을동화'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덕분에 마암분교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누구보다도 초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많은 창우는 소문난 개구장이지만 마음이 깊고 의젓해서 3학년때까지 담임을 맡았던 김용택시인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섬진강 호숫가 언덕에 사는 창우를 시인은 마암분교 아이들의 동시집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네번 쯤 불러야 뒤돌아보며 빙긋이 웃는다. 화가 나서 꿀밤이 올라가다가도 그 천진스런 표정에 내 손은 슬그머니 풀어지며 웃음이 절로 나오게 된다. 아주 잘 생겼고, 귀엽다. 다희를 속으로 무지 좋아한다. 나중에 멋진 사나이가 될 것이다.'-동시집 <달팽이는 지가 집이다> 중에서’

 

졸업식을 사흘 앞둔 지난 2월 1일, 창우와 장군이는 뛰고 소리치며 어린 동생들과 신나게 놀았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에게 이런 날은 다시 오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찬바람 불어오는 운동장 철봉대에 코 끝 빨개진 창우와 장군이가 매달렸다.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며 창우와 장군이가 훌쩍 재주를 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힌 마암분교의 겨울 풍경은 그래서 더 아름다워졌다.

 

김용택시인이 운암초 졸업식에 간 까닭은?

 

김용택시인은 지난 4일 운암초등학교 졸업식에 갔다. 마암분교를 졸업하는 창우를 축하해주기 위해서다. 시인에게는 특별한 나들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창우를 데리고 전주에 나온 그는 전주로 전학온 다희와 만나 저녁도 먹고 영화 '말아톤'을 봤다. 영화가 감동적이었는지 아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아이들은 다희가 전학가기 전까지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그는 아이들 3학년때 덕치초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몇안되는 아이들 모두 눈에 밟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싶은 아이들은 창우와 다희였다.

 

창우와 다희는 시인이 삶의 새로운 기쁨에 눈뜨게 해준 아이들이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생활을 쓴 이야기는 산문집 '섬진강 아이들'로 엮어졌다. 그중에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 오너라'는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렸다.

 

"창우와 다희는 학교에 오기전부터 형을 따라 학교에 왔어요. 수업도 같이 들었는데 질문이 하도 많아 수업에 방해가 되었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놀아라고 했어요. 아이들끼리만 놀고 있으니 위험했죠. 제가 부모님들께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일주일에 수요일하고 토요일 두번만 보내주십사고 부탁드렸지요." 그런데 얼마 안되어 시인은 아이들을 다시 학교로 불러들였다. 아이들이 보고싶어 자꾸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입학했을때 시인은 담임이 됐다.

 

3학년까지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시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기념으로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오랫동안 못만났던 창우와 다희는 처음 얼마동안은 서먹한듯 쉽게 이야기 붙이지 못했지만 곧 마음을 텄다. 그는 아이들과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마암분교의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에게 시인은 중학생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또 한편의 추억거리가 만들어졌다.

 

"창우 졸업식에 갔으니 다희 졸업식에도 가야지요. 마암분교의 시절은 이 아이들의 존재로 더 아름다워집니다." 시인과 아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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