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전주 초청강연회 대성황
“자본주의와 패권주의에 물들어 있는 비자율적인, 비주체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산에 가로막히면 돌아가고, 웅덩이에 빠지면 다 채워 나가는, ‘절대 다툼이 없는’ 물의 철학에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19일 오후 4시, 자본주의사회의 존재론에 대비되는 동양 고전의 ‘관계론적 사고와 삶’을 화두로 최근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펴낸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64)의 강연이 열린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건지아트홀은 220석의 객석과 강단 위, 통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로비까지도 청중들이 몰리는 강연회장의 진풍경을 낳았다.
‘동양 고전으로 보는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3시간 가깝게 강연한 신교수는 주역(周易), 논어(論語), 노자(老子), 묵자(墨子) 등 고전에 담긴 지혜로부터 현실 과제를 명쾌히 제시하며 좌중을 끌어들였다.
“20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던 곳이 전주이지요. 하지만 갇혀있던 곳이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8·15 특별가석방으로 교소도를 나온 햇빛 찬란했던 88년 8월 14일. 그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출소후 17년만에 처음 찾는 전주에서의 강연. 신교수에게 전주 강연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변화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주체성’이 결여됐음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주체성, 다시말해 나의 정체성은 배타적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경험한 것의 총체입니다.”
‘세계의 근본적 구조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다’. 5년간 독방 생활을 하면서 ‘면벽명상’을 한 그가 ‘과거로의 추체험’을 통해 내놓은 결론이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와 사건 속에 얽히게 됩니다. 배타적인 ‘나’란 있을 수 없죠.” 사회구조가 황폐화되는 것도 이같은 관계성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붓글씨에 이를 비유했다. “한 획의 실수는 다음 획으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한쪽을 강조해 획 간의 조화와 균형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글자 하나로 완벽성을 기한다는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더욱 황폐해지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물음에 맹자의 ‘이양역지’(以羊易之)에서 그 답을 구했다.
신교수는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안타까워 하던 임금이 대신 양으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이 글에서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다시말해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가 없는 것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인간적 만남이 결여된 현 사회를 꼬집어 말했다.
그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자가 서로 상품교환 형식으로 만나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관계에서도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폐화된 인간의 도착된 정서를 청산하고, 절망의 상태에서 희망을 찾는 대안을 신교수는 ‘물의 철학’에서 찾았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죠. 절대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관계론적’ 입장에서 꼭 필요한 삶의 철학이죠.”
그는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주문했다. 그리고 인간의 식탁 논리로 양분된 ‘독버섯과 식용버섯’이 버섯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삶의 자부심도 함께 당부했다.
강연 말미에 그는 “사회는 쉽게 바꿔지지 않지만, 인간미 넘치는 사회로 바꾸기 위한 모델이 필요하다”며 전주를 그 모델로 제안했다.
“전주를 외부로부터의 변화 대상이 아닌, 우리의 자부심을 방어하는 ‘작은 숲’으로 만들어 봅시다. 인간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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