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7:00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템포] 고창 공음 학원농장의 봄축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리밭으로 꼽히는 고창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에는 초록빛 생명으로 차오르고 있다.../안봉주기자 안봉주([email protected])

올해 봄은 유난히 더디다. 더디게 오는 봄을 기다리느라 산천은 삐죽 삐죽 좀이 쑤신 모양이다. 별안간 찾아오는 눈발에 다시 몸 움츠리는동안 겨우내 몸살 앓았을 생명들이 언 땅 뚫고 나온 자리.

 

봄이다! 봄이다!

 

파릇 파릇 새살거리듯 지천에 쏟아져나온 새싹들의 함성에 산천이 깨어났다.

 

고창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의 청보리밭.

 

여린 보리새순들이 서로 어깨 기대어 앉은 넓은 들판은 초록빛 생명으로 차오른다.

 

선동리 청보리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리밭으로 꼽힌다. 넓기로 치자면 김제의 광활한 ‘징게맹개 너른들’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나즈막한 구릉과 구릉이 이어지면서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보리밭 풍경은 선동리보다 쉬이 더 아름다울 수 없다.

 

올해 보리는 다른해보다 보름정도 늦게 싹을 틔웠다. 땅밖으로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눈떠보니 맑은 하늘. 청보리밭의 초록빛 물결은 낮게 내려앉은 하늘과 맞닿아 한결 푸르고 눈부시다.

 

선동리 보리밭은 올해 더 넓어졌다. 보리밭이 된 들판은 30만평. 지난해보다 10만여평이 늘었다. 학원농장 말고도 보리밭 경작에 나선 주변 농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덕분이다.

 

지난해 말 고창군은 이 일대를 경관농업특구로 지정했다. 대신 이 지역에서 수확한 보리는 군이 모두 수매해간다는 약속을 해두었다.

 

고창의 보리는 그 역사가 깊다. 알고보니 고창읍성의 이름인 ‘모양성(牟陽城)’이 보리 모(牟)자로 쓰여진 이유도 보리밭의 연원과 관련이 있다. 옛날 고창에는 보리밭이 많았다. 그러나 보리쌀이 주식이었던 시절을 지나자 그 많던 보리밭은 수박 등 고소득을 위한 농작물로 대체됐다. 보리쌀이 밥상위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된 이후 고창의 보리밭도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고창 공음면 학원농장을 중심으로한 30만평 보리밭은 고창의 보리밭 역사를 돌려놓은 새로운 선택이다.

 

가슴시려오는 초록빛 물결. 어린 새순들은 이제 하늘 향해 쑥쑥 키를 높이기 시작했다. 눈부신 봄빛과 살랑거리는 봄바람 껴안는 낮과 밤을 지내며 어린 새순들은 힘차게 몸을 키우고 알곡을 맺을 것이다.

 

청보리밭의 풍경은 이번주부터가 제격이다. 이제 막 차오른 보리의 물결은 하늘의 빛깔에 따라 봄바람의 결에 따라 연두빛이거나 초록빛으로 제몸을 바꾼다.

 

걸음마 매우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학원농장을 찾은 젊은 부부. 언뜻 길위를 걸어오는 듯 싶더니 보리밭에 들어가 어느새 초록이 됐다.

 

학원농장의 주인 진영호씨는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관광객들이 찾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보리밭이 절정을 이루는 기간은 한달정도. 고창군은 이 시기에 맞추어 ‘고창청보리밭축제’를 연다. 4월 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여기 청보리밭. 가슴 시려오는 초록빛 물결, 하늘 가득 차오르는 생명의 물결이 부른다. 그리움이 앞서간 자리에 희망이 놓인다.

 

학원농장 주인 진영호·나란희씨 부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보리밭을 가꾼 학원농장의 주인 진영호(57)·나란희(54)씨 부부. 지난 92년에 귀농했으니 올해로 13년째. 10여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 대기업 이사였던 진씨는 이제 진짜 농사꾼이 됐다.

 

40대 중반, 앞날 전도양양했던 그는 어렸을적부터 꿈꾸어온 목표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사회적인 출세보다는 농촌의 삶을 성공적으로 꾸려보는 일. 그에게는 선친(진의종 전 국무총리)이 남겨준 적잖은 땅이 있었다. 고향인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의 개간되지 않은 들판과 잡목 우거진 땅.

 

고생을 작정한 귀농이었으나 농삿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손이 덜가고도 수확할 수 있는 보리 경작을 찾아낸 것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처음부터 순수한 농사에만 마음을 둔 것이 아니예요. 농촌관광사업을 하고 싶었죠. 귀농하자마자 관광농원으로 일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예요.”

 

4만여평으로 시작한 보리 경작은 해마다 땅을 늘려 올해는 10만평이 넘게 보리를 심었다. 드넓은 청보리밭은 그렇게 생겨났다.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찾아오기 시작한 사람들이 해마다 많아졌어요. 별도의 관광대책이 필요하게 되었죠.” 지난해부터 고창청보리밭축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봄에는 보리를, 가을에는 콩을 심었던 진씨는 지난해 콩 대신 메밀을 심었다. 봄에 초록물결을 이루었던 자리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메밀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가을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자신의 꿈인 농촌관광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얻은 셈이었다.

 

“가능성은 보이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청보리밭 축제나 메밀꽃 관광객을 맞을 수 있는 기간은 늘려잡아도 2-3개월이지요. 수확량으로 수입구조가 충당되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농원 살림을 꾸리기에는 너무나 빠듯해요.” 관광사업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보리와 메밀 수확으로 얻어지는 예산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그동안 이것 저것 투자하다보니 이제 남은 것은 그를 불러들인 땅 뿐. 그래도 그의 얼굴은 늘 웃음이다.

 

몸 고달픈지 모르고 일만 좆아다니는 남편과 인부들 밥챙겨주는 일에 온갖 살림까지 꾸리느라 쉴사이 없는 아내.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 준비로 마음까지 바빠진 진씨 부부가 잠깐 산책길에 나섰다.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초록들판, 봄바람이 머물까. 부부가 먼저 웃음으로 봄바람을 부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