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에는 아직 사잇길이 나지 않았다. 이제 새싹 터뜨린 여린 보리 새순이 빽빽하고 촘촘하게 채운 보리밭에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가닿지 않은 덕분이다. 꼭 그만 그만큼 낮은 구릉을 이어가며 놓여있는 청보리밭의 초록물결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보리밭 사잇길이 드러나면 풍경은 더 새로워진다.
보리가 막 싹을 틔우는 정월에는 보리밟기가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이웃끼리 품앗이로 보리를 밟아주거나 학교 단위로 보리밟기 봉사를 나가기도 했다. 한줄로 길게 늘어서 차근 차근 보리를 밟아나가는 풍경은 이제 좀체 만날 수 없다. 대부분 농기구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학원농장도 예외가 아니다. 농장분만해도 10만여평에 이르는 보리밭은 여러 갈래로 구분되어 있지만 워낙 밭 면적이 넓어 트랙터를 동원해야만 제때 보리를 밟을 수 있다. 여린 싹이 밟히는 일은 처참하지만 그것은 보리의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절차다. 보리밟기는 언땅을 헤치고 새싹이 나와 들떠있는 흙을 다져 보리의 뿌리가 잘 박힐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보리밟기는 이미 지났지만 보리밭을 거닐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름다운 청보리밭 학원농장에서 열리는 고창청보리밭 축제다. 오는 9일부터 열리는 이 축제는 5월 8일까지 30일동안 이어진다. 이 기간은 청보리밭이 초록의 물결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이기도 하다. 청보리밭이 가장 절정을 구가하는 시기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고창군이 주최하고 고창청보리밭축제위원회(공동위원장 최석기·진영호)가 주관하는 이 축제는 올해로 두번째다. 지난해 첫 축제에는 27만여명이 다녀갔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청보리밭은 몸살을 앓았지만 씩씩하게 자라 알차게 영근 알곡을 쏟아냈다. 보리의 놀라운 자생력 덕분이다.
올해 축제는 지난해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해졌다. 문화체험 프로그램은 물론, 먹거리며 놀거리까지 관광객들을 위해 주최 주관측은 본격적인 시설을 갖추었다. ‘지역농경문화의 재발견’을 주제로 내세워 전통농경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새롭게 하겠다는 의도다.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상설체험행사다. 짚공예, 규방공예, 천연염색, 대장간, 농경수확 체험, 판소리 등 민속 기능과 전통문화 체험 교실에 두부와 보리개떡을 만들어보는 체험시간도 상설화한다. 이 체험교실을 위해 ‘민속기능사대학’을 별도로 진행, 지역에서 손재주 있는 기능인들을 발굴해 16시간의 교육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축제를 치르고보니 관광객들이 축제현장에 머물고 간 시간이 평균 1시간이었어요. 청보리밭을 둘러보는 산책으로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데 아마도 사진 찍고, 잠깐 보리밭 거닐어 보고 하는 정도였겠지요.”
머무는 시간이 그렇게 짧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는 진위원장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아름다운 청보리밭을 산책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상설체험행사를 늘리고, 전통놀이마당을 만들고 거기에 상설공연으로 판굿까지 들여놓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축제동안에는 농촌관광국제학술대회, 판소리한마당공연, 어린이 글·그림대회가 열리고 도시어린이를 위한 흙놀이 공간도 마련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학원농장의 한켠에 있는 백민기념관도 들를 수 있다. 백민기념관은 진위원장의 부친인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유품과 역사적 사료, 어머니 이학여사의 자수공예품과 평생동안 모은 도자기 등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문의 축제위원회 (063)562-9895, 학원농장 564-9897
청보리밭 오가는 길에
청보리밭에 마음을 두고 고창 학원농장에 가는 사람들이라면 청보리의 운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좋다.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는 청보리밭은 여러군데로 흩어져 있어 모두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원농장은 청보리밭 산책을 위해 별도의 길 안내표를 세워두었다. 아기자기한 길이며 막힌데 없이 탁트인 구릉을 흙길 따라 걷는 즐거움도 크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2시간은 족히 청보리밭을 둘러보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왕 마음 먹은 여행길이 너무 짧아 아쉽다면 가고 오는 길에 고창의 명소를 들러볼 것을 권한다. 고창에는 가볼만한 곳이 적지 않지만 학원농장의 청보리밭 축제에 맞추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동백꽃이 아름다운 선운사와 세계문화유산이 된 고인돌 유적, 읍내에 있는 고창읍성 모양성과 판소리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올해는 꽃소식이 조금 늦어졌지만 4월초부터 중순까지 절정을 이루는 선운사 동백꽃은 청보리밭 축제와 그 시기가 맞닿아 있어 스쳐가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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