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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주국제영화제] 삶의 허상에 가득찬 고통

지아장커는 중국 지하전영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8년 동안 중국 정부는 그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중국 정부는 지아장커와의 긴 불화를 끝내고 지하전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계획을 수정한 것 같다. 지난 4월 초, 지아장커의 최신작 <세계> 가 중국 내에서 개봉될 수 있게 행정적 조치를 취했고, 중국 언론들의 관심도 이에 못지않게 뜨겁다.

 

<소무> <플랫폼> <임소요> 에 이은 지아장커의 네 번째 장편 영화 <세계> 는, 그동안의 지아장커의 영화가 <고향 삼부작> 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고향 산시성을 배경으로 하던 데 비해서, 북경으로 공간적 이동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지아장커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그가 변한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 만큼, <세계> 는 지아장커의 기존 영화들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2.35:1의 넓은 화면이나 화려한 칼라감각, 더구나 극중 주인공들이 자주 사용하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나올 플래시 애니메이션까지 등장한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기존 영화들과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것이다.

 

<세계> 의 주 무대는 북경에 있는 세계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우리에게 하루를 투자한다면 당신에게 세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걸려 있다. 영화는 고향인 산시성을 떠나 북경으로 올라온 자오타오와 그녀를 유혹하는 타이성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타오는 공원에서 일하는 댄서이며 타이성은 공원 경비원이다.

 

지아장커가 북경의 세계 공원을 영화의 주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다. 북경은 중국의 심장부다.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주의,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자본주의의 접목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허름한 산시성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금 현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세계 공원에 전시된 이 조형물들처럼 가짜라는 것이다.

 

지아장커의 <세계> 는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삶의 허상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려는 고통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세계> 를 천박하다고 비난한다면, 외적인 감각의 화려함 이면에 잠복된 그들의 고통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의 주인공들은, 절망적인 공간 속에서 터질 듯 솟구치는 분노를 안고 살아가던 고향 삼부작 속의 인물들보다 내적 고통이 덜하지 않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변한 것이다. <세계> 는 현대 중국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여전히 지아장커를 지지한다. 여전히 국내 극장가에서도 비상업적인라는 이유로 지아장커의 영화가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곳이 아니면 어디서 그의 영화를 만날 수 있겠는가. 2일 오후 7시 30분 메가박스 4관, 5일 오후 8시 프리머스 3관

 

/하재봉(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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