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바람 행렬이 너무 앞섰었나보다. 훌쩍 여름으로 가나했더니 신록이 깊어진 산과 들판에서 아직 봄바람이 주춤거린다.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의 자생차밭을 찾아가는 길은 초여름 햇살을 받아 차오르는 산천의 푸르름으로 눈부시다. 차나무 새순도 이 햇살을 받아 쑥쑥 제 몸을 키웠을 것이다.
강경마을은 동계면 귀미리 구미마을을 거쳐 적성강을 따라 가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만나는 마을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었지만 마을사람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 입구까지 아스팔트 포장이 됐다. 마을사람들은 말끔히 단장된 도로위로 시내버스가 달려 마을까지 닿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버스는 닿지 않는다.
자생차밭은 한가로워보이는 강경마을을 안고 있는 높지않은 산에 분포되어 있다. 들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어 10여분. 건강한 활엽수들 사이로 씩씩한 자생차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전남의 이름난 차밭을 상상한 사람들에게 산등성이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자생차밭은 의외의 풍경이다.
지난 4월말부터 찻잎따기가 시작됐지만 씩씩하게 자란 차나무의 새순들은 차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제 몸 숨기지 않고 활짝 웃고 있다.
강경마을의 자생차밭은 차인(茶人) 부부 박시도·정정숙씨에 의해 발견됐다.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거나 지리적인 여건과 생태학적인 특성으로 자생차밭의 존재가 추정되긴 했지만 이들 부부에 의해 군락이 발견되어 차를 생산하게 된 것은 4년전부터. 마을 사람들이나 이 산을 찾아다닌 사람들의 눈에 안띄었을리 없지만 차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소중한 차나무 군락은 그저 활엽수 사이에서 자라는 초목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군락의 면적은 대략 1만여평 정도. 전문가들은 전남에 대규모 야생차밭이 있긴하지만 인간의 손길을 아예 거치지 않고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고 스스로 자라 수명을 다하는 자생차밭의 군락지 면적으로는 보기 드문 규모라고 놀라워한다.
자생차밭 군락이 있던 곳은 고려시대 사찰이 있던 폐사지다. 차나무 군락 역시 고려시대부터의 연원이 추정되고 있다.
강경마을 자생차밭의 존재는 ‘자생차밭 보존’에 나선 차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의미다. 규모로도 그렇지만 차나무가 자라는 환경도 더없이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다서(茶書)들이 꼽고 있는 자생의 기본적인 조건은 물론이고 강과 암반을 끼고 있어 연중 강수량을 비롯해 자생할 수 있는 최적의 요구 조건을 갖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자생차밭이 단일수종의 나무들과 어울려 있는 것과는 달리 강경마을의 자생차나무 군락은 다양한 활엽수들이 공존한다.
박씨는 “활엽수의 씩씩한 기운을 마시고 자란 차나무의 잎은 맛도 다르다”고 말한다.
차나무 군락지에 들어간 박씨부부와 차인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새순 따내는 마음 미안한 감 없지 않으나 그 향과 맛으로 속세의 인간들을 순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움이 아닐까.
바람 살짝 스치니 차나무 향이 퍼진다. 스스로 자란 차나무에 행복해하는 차인들의 기쁨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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