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부로 느낀다’는 말이 자주 쓰인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物價)와 수치물가(數値物價)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몸의 오관(五官)중 눈, 귀, 코, 혀의 느낌을 제쳐놓고 하필이면 ‘피부의 느낌’ 즉 촉각을 앞세우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관을 지배하는 의식(意識)마저 밀쳐 놓고 촉각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 코, 귀의 느낌은 제2선 느낌에 예비적 느낌이고, 피부의 느낌은 제1선 느낌에 본격적 느낌이란 말인가?
아니면 눈, 코, 귀의 거리감보다는 맨피부, 맨살의 무(無)거리감이 진짜 느낌이라는 소리인가?
이 말은 무엇인가 만져보고 피부로 문질러 느끼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는 일종의 ‘장적(場的) 성취욕구’의 불만에서 발산하는 것이라는 어떤 심리학 박사의 견해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실감(實感)의 총아로 떠오른 그 피부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사람의 피부에는 보통 370만개의 신경종말이 깔려있다고 한다. 그 중 냉(冷)과 온(溫)이 20만개, 촉(觸)과 압(壓)이 50만개, 통(痛)신경종말이 3백만개라고 한다. 그리고 온점(溫點)이 ㎠당 1∼2개인데 비해 냉점(冷點)은 ㎠당 13∼15개란다.
따라서 피부의 감각은 촉, 압, 통, 온, 냉의 다섯 가지고 그중 아픔을 가장 잘 느끼며, 온보다는 냉을 더욱 잘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피부라는 것이 신체의 부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고 옷을 입었을 때, 그것도 겨울철 몇 겹씩 껴입었을 때 피부로 느끼려면 어찌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두 훌훌 벗어던진채 나체로 느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피부로 느낀다!’는 말은 몸의 대부분을 땅에 붙이고 사는 파충류에게나 알맞은 말이 아닐까?
/강대택(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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