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 항공산업에 인생을 걸었어요"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하늘을 날았다. 육군 항공대 소속 조종사로 근무한 기간만 23년. 2000년 예편한 이후 땅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널려 있을 것 같았다. 이것 저것 마음 가는 사업에 손을 댔지만 어느 것 하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었다.
불과 2-3년 사이에 젊은 시절을 바쳐 모았던 재산도 바닥이 났다. 이제 마지막 남은 선택. ‘내가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결국 그가 찾은 길은 ‘하늘 위’에 있었다.
전주 모악항공의 주인이자 지도 교관인 차용관 대표(50).
“군에서 예편한 이후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곳이 여기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었다니까요.” 장난기 많아 보이는 오십줄의 교관은 행동도 말투도 여전히 군인 자세다.
그가 초경량비행기를 갖추고 레저용 항공산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2년. 이런 저런 사업에 실패하고 난 후다. 그는 오랜 세월 군대에 몸담고 있었던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지만 그의 선택은 단순히 사회적 성공을 염두에 둔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제가 갖고 있는 재주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레저용 항공산업에 대한 관심은 일찍부터 갖고 있었고, 특히 고향에서 그 일을 내가 선도할 수 있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2-3년동안의 외도(?)가 있긴 했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던 레저 항공 산업에 자신의 일생을 걸었다. 초경량비행기 3대로 창업한 전주모악항공은 전북지역 레저항공의 문을 연 첫 주자. 아주 적은 숫자이긴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가야 했던 경비행기 마니아들의 호응속에서 의욕적인 출발을 했다. 그사이 회원들도 늘어나고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졌지만 레저 항공 산업의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대중화까지는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한 까닭이다.
“경비행기 레저에 굉장한 편견들을 갖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지요.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시간을 투자해야만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웬만한 레저 종목보다 부담이 적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올해로 3년째,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회원 모집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어린이 항공교실’이나 기업과 관공서를 대상으로 하는 ‘직장인 훈련코스’ 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늘에 오르면 지상에 대한 고마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갖게 되지요. 확신하건데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보면 삶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기도 하지요.”
모악항공을 개설한 이후 그는 환경감시와 산불방지에 나섰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땅위의 온갓 것들은 숨길 수 없는 실체. 그는 보이는 것을 외면할 수 없어 시작한 이 일로 사회적인 기여를 할 수 있으니 ‘일거 양득’이라고 말한다.
지난 4월 말 삼천동에서 이곳 만성동으로 이사 온 이후, 그는 활주로를 닦는 일로 하루가 짧다.
이제 다시 시작이지만 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경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일이 일상처럼 즐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는 새벽부터 어두워질때까지 만성동 작은 구릉위의 콘테이너 박스에서 지낸다.
“여름 더위요? 까짓껏 하늘 한번 날고 나면 그만이예요.”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그의 꿈이 하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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