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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선지식' 불꽃처럼 가다

혜산스님 영결식·다비식 내소사서 봉행

지난 13일 입적한 우암당 혜산스님의 영결식이 17일 부안 내소사 대웅전에서 산중장으로 봉행했다. 혜산 스님의 운구 행렬이 다비식장에 도착 스님들의 거화 소리와 함께 훨훨 타오르고 있다.../이강민기자 이강민([email protected])

‘뜬 세상 구름 같고 백년도 꿈이어니 / 이 가운데 사는 우리 풀끝에 이슬일세 / 우암당 홀로 가시는 곳 / 도반들 울며불며 제사 지냅니다.’

 

눈물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슬픔은 빗켜갈 수 없었다.

 

17일, 안개비가 촉촉히 내린 이른 아침. 혜산 큰스님과의 못다한 인연을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내소사로 이어졌다.

 

혜산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봉행되는 날이다.

 

오전 10시 다섯번 타종하는 명종의식을 시작으로 영결식이 엄수됐다. 내소사 대웅전 앞에서 봉행된 영결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불자와 사부대중 2천여명이 운집했다.

 

“얼마전 ‘해외로 포교하러 가자’는 말에 ‘안된다’고 했더니 ‘그럼, 나 죽소’하던 혜산이 이렇게 떠나다니…. 부디 못다한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극락왕생하여 다시 만날 그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40여년 전, 혜산 스님이 출가하던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국제원로승가회 사무총장 도철스님. ‘한국 불교를 반상 위에 올려놓겠다’던 혜산스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는 도철스님은 그를 학처럼 훨훨 날아온 이 시대의 선지식이라고 소개했다.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영결식이 끝나고, 대웅전 앞 혜산 스님의 법구는 형형색색 만장을 든 행렬 속에 100m 정도 떨어진 다비장으로 향했다. 스님을 배웅한 운구행렬은 그러나 송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지장암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장암은 혜산스님이 지난 1963년 내소사에서 해안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던 곳. 불자로서 첫 인연을 맺은 곳이다. 한참을 돌아 다비장에 다다른 법구는 곧바로 연화대에 모셔졌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며 주변을 에워싼 스님들이 불을 놓았다.

 

불길이 치솟자, 스님들은 “큰 스님, 불 들어가요. 빨리 나오세요”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혜산 스님이 사바세계를 떠나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법계(法界)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앞에 나서기 보다 한 발 물러나 있기를 원했던 스님의 다비식은 그 무엇보다 경건했다. 죽음과 탄생은 다르지 않다고 했던가. 미혹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한 혜산 스님.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윤회란 말로 애써 마음을 위로했다.

 

혜산스님은

 

‘콩 열매를 얻으려면 밭에 콩을 심으면 되고, 잘 맺은 콩을 얻으려면 거름도 챙겨주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혜산스님의 가르침은 ‘인과법’에 있다. 쉽지만서도, 속세에서는 그리 쉽지만도 않은 얘기다. 그래서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불교의 진리관은 ‘중도’. 혜산스님은 선(善)도 취하지 않고, 악(惡)도 취하지 않는 ‘중도’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온 어른이라고 내소사 주지 진원스님은 주저없이 말한다.

 

그는 또 무소유의 귀감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고사했다는 얘기에서도 그의 품성을 짐작케한다.

 

혜산스님은 1963년 입산해 40년 넘게 내소사에 머무른 사찰의 큰 스님.

 

그는 대학 졸업 후, 공무원에 임용됐지만 ‘갈길이 아니다’며 방황하다 우연히 접한 해안스님의 저서 ‘금강경 해제’와 인연이 돼 불자의 길을 걸어왔다.

 

내소사 중창불사는 철석같은 심념과 원력으로 정진해온 그가 남긴 최고의 업적. 지난 83년 중창불사로 고려동종(보물 277호)과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1268호), 3층 석탑(도 유형문화재 124호) 등 문화재 보존에 큰 업적을 남겼다.

 

10여년 전, 내소사 주지 소임을 맡아 사찰을 수행도량으로 가꾸면서 과로로 인한 뇌경색을 일으켜 투병생활을 해왔다. ‘삶 전체가 수행이어야한다’는 그는 불편한 몸을 아랑곳않고 포교활동에 정진해왔다.

 

세수 73세, 법랍 43세. 1933년 전남 영광 출신인 혜산스님은 1958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1963년 내소사에서 해안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3년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총림 해인사 선원장,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조계사 주지, 서울 성북동 전등사 주지, 한일불교교류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89년부터 93년까지 내소사 주지를 맡았으며 그동안 회주로 후학을 지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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