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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영화] 귀 막지마! 널 부르잖아

여고괴담4-목소리

공포에 대한 반응속도가 빠른 쪽은 아무래도 여자다. 젊은 여자일수록 무서운 것에 대해 민감하다. 어디 그뿐인가.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번쯤에 학교에 대한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소풍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오는 이유라거나 늦은 밤 복도에서 무언가를 만났다는 으스스한 얘기 등은 한번쯤 경험해봄직하다.

 

그래서일까. ‘여고괴담’은 어느새 한국 공포영화의 대명사가 됐다. 여자와 고등학교, 친구, 자살, 일기장, 왕따, 동성애 등의 코드가 적당히 어우러진 ‘여고괴담’시리즈는 제목만으로도 왠지 관심을 가져볼만한 뭔가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고괴담’이 관객들을 찾는다. 지난 98년 첫번째 작품이후 벌써 네번째. “에이 또야”라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공포영화 가운데 이만한 소재를 찾기가 그리 쉽지않다.

 

그동안 ‘여고괴담’시리즈의 생명력은 입시지옥이라는 고교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입시지옥을 비판하고 여고생들의 은밀한 관계를 그려왔다. 여기에 기존 학교의 전설(또는 괴담)과 결합해 공포영화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은 톱스타에 올랐지만 당시만해도 그저그런 배우였던 이미연과 최강희 등이 출연했던 ‘여고괴담’은 박기형감독이 연출했다. 모교에 부임한 국어교사가 9년전에 죽은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설정이었다. 귀신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미친개’로 대변되는 교사의 폭력, 대입지상주의에 찌든 교육현실 등이 영화의 전면에 세워졌다. 어느 누구도 눈길 한번주지않는 학생이 9년동안 학교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귀신이었다는 설정이 참신했고, 이 영화를 계기로 한동안 사라졌던 ‘귀신영화’가 봇물을 이뤘다. 무엇보다 귀신이 습격할 때 쓰인 ‘당-당-당’하는 점프컷이 눈길을 끌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Memento Mori)는 1999년 겨울에 선보였다. 김민선과 박예진 등이 주연한 이 영화의 뿌리는 동성애. 한 여학생이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 한 소녀의 자살, 두 여고생의 동성애, 사제간의 독특한 사랑이 그려진다. ‘교환일기’를 매개로 한 여고생이 죽은 날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과 이 여고생이 지난 일년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교차한다. 시간이 교차하는 탓에 극전개가 정신없지만, 관객들로부터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2003년에 개봉한 ‘여고괴담3-여우계단은 ‘여우야 여우야 내소원을 들어줘’로 압축된다. 발레콩쿠르에 참가할수 있게 해달라고, 단짝친구와 언제나 함께 있게 해달라고, 살이 빠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하지만 욕망의 성취에는 댓가가 따른다. 한 소녀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다른 친구들은 감당하지 못할 공포와 마주친다.

 

그리고 올해 여름 ‘여고괴담4:목소리’가 선을 보인다.

 

“‘여고괴담’이기 때문에 쉬웠고, ‘여고괴담’이기 때문에 어려웠다”는 최익환 감독(‘여고괴담1’의 조감독출신)의 한마디가 예사로 들리지않는다. 성공한 시리즈라는 점에서 제작, 캐스팅,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지만 시리즈가 갖는 상투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수준이 좀 높은가. 눈에 익은 장면이 나오면 당장 ‘이미 전편에 사용했던 설정을 울궈먹는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최익환감독은 고민끝에 비슷함 속에서도 또다른 뭔가를 꺼내들었다.

 

이번 괴담의 주인공은 이미지 대신 ‘소리’로 자신을 드러낸다. 소스라치게 놀라게할 정도로 억지스럽거나 과장된 효과음은 없지만, 일상의 소음이 공포를 증폭시킨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복도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 보일러실의 기계음,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등이다.

 

또 전편들이 제기했던 입시문제나 치열한 경쟁 보다는 개인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는 요즘 아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친구’와 ‘소통’.

 

단짝 친구였던 영언(김옥빈)과 선민(서지혜), 갑작스런 영언의 죽음, 그리고 선민에게만 들리는 영언의 목소리가 극초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언의 죽음을 둘러싼 음악 교사(김서형)와의 관계 등이 전면에 불거지면서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단순한 우정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교사-학생들 간의 동성애 설정이 더해지면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목소리’가 기존 영화와 달리 초반에 주인공이 죽는다는 설정이 눈에 띈다. 처음부터 ‘주인공은 귀신’이라는 설정을 공공연히 관객에게 공개한다. 그리고 ‘목소리’의 귀신은 말을 하고, 노래를 하고, 슬퍼한다. 마치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 간의 관계처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고, 다툰다.

 

주인공들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이미 CF스타들로 성장했다. ‘춤추는 천사’ 서지혜를 비롯해 김옥빈, 차예련 등은 이름은 낯설지만 얼굴은 낯익은 예비스타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고괴담’의 미덕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눈에 번쩍 띄이는 신인배우들, 충실한 연출력. 자, 이제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채 비명지를 준비를 하고 이들을 만나러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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