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펴낸 귀농부부 박범준·장길연씨
2004년 2월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산촌마을, 촌스러운 산골 마을에 안긴 부부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의 힘일까. 어느덧 부부는 산골의 아늑한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물들어 있었다.
낡은 트럭을 타고 오랜만에 전주 나들이에 나선 박범준(32) 장길연(30) 부부. 그 사이 그들은 더욱 닮아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귀농의 이유를 물어왔지만, 그 때마다 대답이 달랐어요. 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온 것 뿐인데 주변에서 삶의 모습이 평범치 않다고 하니,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있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었지요.”
귀농의 이유, 그들은 스스로에게 대답이 필요했다. 그래서 펴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정신세계원)는 부부에게 삶의 중요한 기록이다.
“‘거기서 뭐 먹고 살려고 그래?’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소비를 줄이는 것도 생계의 중요한 대책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시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지출되는 것들을 줄이고, 우리 손으로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것으로 삶을 꾸려나가기로 했지요.”
결혼 4년차.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엘리트 부부의 한 달 수입은 고작 50만원 정도다. 잡지와 신문에 산촌 생활을 연재하며 거둬들이는 원고료와 안성면에 나가 인터넷 강의를 하고 버는 돈이다. 천연염색과 바느질을 하는 아내는 가끔 일당 3만원짜리 과수원 일을 나가기도 한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래잖아요. 결혼을 하고 서로 다른 생활방식 때문에 충돌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해야 했어요. 덕분에 무척 힘들고 아픈 과정을 거치면서도 서로 도망갈 곳이 없었죠.”
닭장을 늘리거나 손수 목욕통과 거름간을 만들어야 하는 당장의 현실 속에서 이들은 부부로, 친구로, 동료로, 역할을 바꿔나갔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서로를 마주보고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이 두마리였던 닭은 아홉마리로, 집 앞 텃밭에는 감자, 양파,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 등 온갖 푸성귀가 가득해 졌다.
“이 곳에 들어오면서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요. 과거에는 내가 합리적이고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에서는 시간을 맞춘다는 것 부터가 억지라는 것을 알게됐어요.”
지난달에는 산골마을에 인터넷이 들어왔다. 부부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은 넓어졌지만, 오히려 밖으로 나갈 일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산촌마을에 들어오면서 포기하게 된 것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일 뿐. 작은 일을 포기하니 건강을 얻고 삶의 여유를 얻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고생이 다를 뿐이지 고생을 안하고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고생 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는 이들은 고생처럼 보이는 것을 행복으로 택했다. 고생 조차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 ‘유목하는 마음가짐’과 ‘신통방통 대화법’ ‘알면서도 고치기 어려운 말다툼 피하는 법’ ‘행복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습관’ 등 책 속에 그 비결을 넣어두었다. 행복을 선택하고, 함께 느끼고 즐기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외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깊다.
“아내는 치유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희생하더라도 아내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른손이 왼손을 잡을 때 떨리지 않듯 한 몸처럼 살아가는 것이죠.”
깊은 산골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아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다. 젊은 부부의 참살이는 눈 맞추기, 발 맞추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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