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6:48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템포-영화] 복수극의 종착역 '친절한 금자씨'

그녀는... 친절합니다 그리고... 잔인합니다

2001년 10월로 기억된다.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적성천에서 박찬욱 감독을 만났었다. 적성댐 건설예정지에서 불과 500m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 ‘복수는 나의 것’을 찍는 중이었다.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급조한 35m짜리 나무다리를 중심으로, 박감독을 비롯해 송강호·신하균·배두나 등 배우와 스탭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맑고 투명한 섬진강 지류를 화면에 담았다. 박감독 특유의, 감독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모니터에서 선글래스로 가린 시선을 응시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박감독은 이때부터 4년여동안 ‘복수’에 매달렸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올드보이’(2003년)를 내놓았다. 그리고 ‘복수’연작의 대미를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ance)로 장식한다. 박감독은 ‘복수’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밑바닥을 과연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는지, 관객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고,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이름을 날리던 박감독은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하드보일드’를 표방하며 ‘복수는 나의 것’을 선보였다. 섬뜩하고 불쾌한 화면이 관객들을 경악케했던 이 영화는 유괴를 소재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 평범한 중소기업체 사장이 유괴범들을 차례차례 잔인하게 살해하고, 신부전증환자인 누나의 수술비를 위해 유괴도 서슴지않던 청각장애자는 자신을 속인 장기밀매단을 찾아내 잔혹한 복수를 벌인다.

 

당시 관객들은 핏빛 일색이던 이 영화를 외면했지만, ‘복수는 나의 것’은 지난해 제5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올드보이’의 발화점이자 복수의 신호탄이었다. ‘올드보이’는 15년동안 군만두만으로 배를 채우며 사설감옥에 갇혀 있던 오대수가 자신을 감금한 사람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을 그렸다. 주체하기 힘든 내용과 독특한 영상미까지 더해져 골수팬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의 완결편이다. 13년동안 자신을 억울하게 옥살이 시키고 배신한 남자에 대한 이금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처럼 잔혹극도 아니고, ‘올드보이’처럼 충격적인 반전도 없다. 복수하면 떠오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논리를 비껴갈 순 없지만, 전편에 비해 복수에 대한 표현이나 관념이 비교적 우아하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금자씨. 갓 스물의 나이에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다.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성실하게 복역하면서 ‘친절한 금자씨’로, 눈에 거슬리는 수감동료를 교묘히 처단한다는 이유로 ‘마녀 이금자’라는 두가지 별명을 얻는다. 드디어 13년만에 금자는 출소한다. 한겨울인데도, 수감될 당시의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래스 차림이다. 금자는 청이제 20대의 춘을 고스란히 교도소로 내몰은 백선생에게 복수를 결행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올드보이’와 유사점이 많다. 두편 모두 최민식이 출연하고, 감옥(또는 사설감옥)에 나와 복수에 나선다는 점이 그렇다. 다만 전편에서는 목적을 향해 앞뒤 가리지않는 복수가 꼬리를 물었다면, 금자는 복수를 하면서도 좌절하고 고뇌한다. 비장감이 넘치다 못해 혐오감까지 줬던 전편과 달리 폭력과 유머가 교차한다. 복수를 직접적이고 충격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속죄와 구원을 이야기한다.

 

박찬욱감독의 복수연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세트와 조명이다. ‘올드보이’에서의 사설감옥이나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의 방은 폐쇄적이고 이국적이다. ‘키치’로 보일 만큼 촌스러운 벽지무늬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않는다. 박찬욱감독이 빼어난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이유도 이같은 세심함 때문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과 이영애가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개봉전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어찌보면 이영애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자역의 이영애는 19살의 청순하면서도 날라리같은 소녀에서, 13년동안을 복역하고 핏기없는 얼굴로 복수의 화신이 되는 33살의 강인한 여인까지 천의 얼굴을 드러낸다. 교도소에서는 “기도는 이태리타올이야, 아기 속살이 될 때까지 빡빡 문질러서 죄를 벗겨내”라며 천사같은 모습을 짓더니, 출소직후엔 착하게 살 것을 권유하는 교회전도사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맞받아친다. 왠만한 욕설은 예사고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죽인다. 복잡미묘한 금자지만, 아무리 봐도 무섭거나 밉지않다. 카메라도 ‘이영애를 어떻게하면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로 일관한다.

 

마지막 복수연작 답게, 전편의 주연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송강호, 신하균, 유지태 등의 깜짝출연은 영화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흡사 연작시리즈의 백미로 꼽히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화이트’‘레드’가운데 ‘레드’에서 세편의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하다.

 

전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중 비중이 낮아졌지만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준 백선생역의 최민식이나 오광록, 이대연, 임수경 등 탄탄한 배우들이 극중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친절한 금자씨’는 후반부의 모호한 결말로 “결론이 뭐냐”는 불만도 없지않다. 하지만 감독은 사랑스러운 여성의 복수극을 통해 ‘잔혹한 복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행위’라고 역설한다. 어리석은 욕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이 영화의 감상포인트다. 18세이상 관람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